이 해
나는 지옥의 존재 유뮤에 관해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복음을 잘 읽어 보면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쓸데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나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너무 늦기 전에
내가 그 길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아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루가의
탕자의 비유에서 일어납니다.
(루가 15,11-32 참조)
그 도망간 아들은 배고픔의
벽에 부딪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썩 아름답지도 훌륭하지도
못한 사실이지만 내용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나치게 세세한 문제까지
염두에 두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당신의 자녀를 구하는 것이어서
배고픔을 이용해 그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때로는 험악한 현실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길을 이끄실 때의
하느님의 사랑은 엄격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잃지 않으시기 위해
우리를 압박하여 철저히 무너뜨리십니다.
우리를 잃지 않으신다는 것은
우리 편에서 이해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가볍게 보거나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이해한다는 것은 형제의
고통을 함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교만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의 탐욕이 누군가를
기아에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우리는 아주 쉽게 말합니다.
"왜 세상에 고통이 있으며,
죄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왜 기아와 전쟁이 있는가?" 라고 말합니다.
힘있는 이들이 사람을
존중하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돕기를 배우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서로 형제들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마 세상이 천국이 될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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