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수성구 2014. 3. 14. 12:51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태어나면서부터 저는 외할머니께 기도의 빚을 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출생 후 사흘 만에 아기를 데려와서 세례받기로 돼 있었는데, 
    저는 그만 나흘 만에 성당에 업혀 갔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였던 
    여(呂東宣, Louis Tourneux) 신부님은 외할머니께 하루 늦은데 책임을 물어 
    대재(大齋, 단식재)를 두 번 지킬 것을 보속으로 주셨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방학 때 외가에 가곤했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새벽 네 시면 
    일어나 기도하시고, 미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저희를 깨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길, 들길을 15분가량 걸어서 성당에 가시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고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지금도 금식재를 지키게 돼 
    있습니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사순시기 매 금요일에 어른들은 
    대재를 지켜야 했고, 소재(小齎, 금육재)는 지금도 그렇지만 열네 살이 되면 
    아이들도 지켜야 했습니다. 8년 전 3월에 세상을 떠나신 저희 어머니는 열심한 
    외할머니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셔서 그런지, 생전에 설이나 추석 명절 때 
    금육재 관면이 내렸다고 말씀드려도 금요일이면 고기를 들지 않으셔서 저희들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요즘에는 교우들이 너무 자유로워!”라고 
    걱정하셨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활짝 열린 이 시대에 ‘재’를 지키는 규정에도 
    우리 교우들이 너무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20년가량 피우다가 끊은 후에는 연습으로도 피워본 적이 없습니다. 
    학생 때는 사순시기가 되면 술 담배 끊기 결심을 곧잘 지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도중에 결심이 깨어지는 일이 잦아서 어려웠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역 교회를 단체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이 마침 성토요일이었고, 그곳 교회 어르신께서 식사 중에 반주로 포도주를 
    좌중에 권하면서 ‘사순금주’에서 해방된 날이라고 기뻐하시던 광경이 인상적입니다. 
    주님의 수고수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의 노력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유혹’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말씀드립니다. ‘죄는 유혹에 동의한 결과’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결심을 수도 없이 하지만 넘어질 때가 무척 많습니다. 
    요즘은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아이들이나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쓰면서도 어쩌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있습니다. 
    깨어있지 못한 결과로 상대편의 아픈 곳을 꼬집거나 엉뚱한 말을 해서입니다. 
    다른 일로 넘어지는 수도 많습니다. 그러나 넘어져서 그대로 사위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용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혹을 ‘당한다.’는 것과 ‘동의 한다’는 것도 분별해야 한다. 
    분별력을 이용하면, 우리는 유혹의 거짓된 가면을 벗길 수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847항)는 가르침에 저는 용기를 얻곤 합니다.
    최홍준 파비아노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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