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고교시절 그 친구

수성구 2020. 10. 21. 05:47

고교시절 그 친구

 

10월 넷째주 연중 제30주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 22-34-40)

 

 

고교시절 그 친구

(한상우 신부.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추수할 때의 벼 이상 냄새와 짚단 냄새가 난 참으로 좋다.

온 가족이 달려들어 고향 논에서 벼를 베고 볏단을 묶고 탈곡을 하던

그 옛날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추수의 기쁨은 삶의 기쁨이며 보람이다.

수확의 본질이 은총이라면 신앙의 본질은 사랑과 감사다.

사랑의 향기는 추수의 향기처럼 그윽하고 깊다.

 

 

어릴 적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운 적이 많았다.

삶이 우리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지만 사랑은

아픔과 좌절까지 끌어안고 삶을 다시 일으켜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랑이 참된 삶이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서로 아껴주고 사랑한 고교 시절 친구가 있었다.

수업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오며 우리는 서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함께 꿈을 나누고 가족사의 아픔을 나누었다.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함께 거닐었던 그 길이 참으로 행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것이 그를 본 마지막이다.

 

 

눈부신 가을날 그는 첫 휴가를 나왔다가 고향 집 근처의 건널목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내 친구가 사제가 되려고 신학교를 다니는데

저도 천주교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하여 그는 휴가 나오기 전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친구의 군종 사제가 들려 준 이야기다.

 

 

그가 떠나고 난 사랑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 또한 사랑뿐이었다.

아름다운 기억. 아름다운 마음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향하기 때문이다.

삶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생명을 깨우는 사랑의 계명이아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은

지금도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삶의 가장 첫째가는 순서 또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연약한 우리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본다.

사랑만이 하느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위대한 소통이 된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사랑의 이 여정이

사랑의 참된 여정임을 믿는다.

어렵고 힘들어도 사랑의 힘을 밎자.

어렵기에 사랑이고. 힘들기에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사랑이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는 사랑의 그 길을 오늘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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