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영감탱이
그놈의 영감탱이
(김진호 신부)
마리아 할머니에게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할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신부님. 우리 집 영감 디지라고 큰 소리로 욕 한번 했어라우..
아니. 그러다 진짜 돌아가시면 우짤라꼬 그랬소이.
와 그랬다요?
신부님. 내 말 좀 들어보소.
그러니까 요즘 꿈자리가 사납길래 자기 전에 이불에다 성수물 좀 뿌렸는디.
그 물이 지 옷에 묻었따고 지랄지랄하길래 영감 디지라고
욕 한번 했지라우.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괜히 미안터라고요.
아이구 할머니. 잘했어. 잘했어.
그래서 속이 시원했으면 잘했어요.
할머니는 그날따라 진지한 표정으로 가슴에 성호경을 크게 긋고 내 방을 나가셨다.
이틀 후 주일날.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미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리아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잘생긴 신랑인 양
요셉 할아버지의 얼굴을 힐긋힐긋 쳐다보면서
본당 소식지로 부채질까지 살살 해주고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술이다. 노름이다. 바람까지 펴 그렇게 있는
속 없는 속 다 썩이던 남편.
나이 들어 집에만 틀어박혀서 온갖 구박을 하더니 결국
간암으로 병원 수발까지
요셉 할아버지는 결국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놈의 영감탱이 눈에 안 보이니 아이구 속이 이렇게 시원할 수 없네.
마리아 할머니는 두 손을 탈탈 털었다.
어느 날 밤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아니 마리아 할머니. 혼자 사는 할멈이 무슨 일로 이 밤에
총각한테 전화한다요. 왜 어디 아파요?
늦은 밤 전화에 걱정이 되어 놀란 마음을 농담조로 물었다.
신부님. 우리 영감 천당이나 갔는지 모르겠네요.
세상을 하도 험하게 살아서요.
신부님. 오늘따라 옆구리가 허전하고 빈집 같아서
그놈의 영감탱이가 이렇게 보고 싶네요.
할머니가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 영감님 영혼 위해서 우리 주모경 열 번하고 잡시다.
나도 함께 기도할게요.
마음으로 토닥여 줬따. 그리고 나도 주모경을 외웠다.
늘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던 사람 좋은 요셉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 부부 인연이란 무엇인가?
남편의 구박 속에서 평생 을 눌려 지냈던 마리아 할머니.
그래도 죽은 영감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오늘도 성모님 앞에서 묵주알을 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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