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까딱없다.
9월 넷째주 연중 제26주일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마태 21-28-32)
아들아. 까딱없다.
(한상우 신부.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아픔을 가득 안고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 마당에 코스모스 화단을 꾸몄다.
호박돌로 경계도 지어주고 모래도 섞어 정성들여 만들었다.
코스모스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린 다음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어머니. 이제는 아프지 마시고
우리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첫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가기 전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건강은 어떠십니까?
태풍에 농작물 피해는 없습니까?
코스모스가 비바람에 쓰러지지는 않았는지요?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들아. 까딱없다...
어머니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 시키시는 데 참으로 귀재시다.
다음 날 고향집에 도착해
어머니! 하며 부르려 할 때 눈 앞에 펼쳐진 코스모스 화단과 만났다.
코스모스 하나하나마다 고춧대를 박고 쓰러지지 않도록
빨간 노끈으로 정성스레 묶어놓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사랑으로 공들일 때 꽃을 가득 피우는 것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물들이던 코스모스!
세월이 지났찌만 코스모스를 볼 때마다 그때의 감동은 생생히 살아난다.
우리의 삶은 보살피는 정성으로 더욱 아름다워지고 새로워진다.
그리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갈망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우리 내면의 울림이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게 새롭고 따뜻하다.
마주치는 모든 관계 속에서 삶을 배운다.
아픔 속에 성장이 있듯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
허영과 가면의 굴레를 벗어나면 모든 게 맑고 투명하다.
하느님 나라는 다시 시작하고픈 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의 나라이다.
세리와 창녀들은 예수님을 통해 다시 태어난 이들이다.
사랑을 잃은 이들이 사랑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희망적인 소식이 된다.
살아있는 복음은 언제나 살아 있는 실천으로
우리를 이끌어 우리 삶의자리를 다시금 만나게 한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속한 소중한 사람들이다.
주시는 분도 부르시는 분도 채워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다.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소중한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나약한 우리들.
도움과 사랑. 정성과 기도가 필요한 우리들이다.
그렇기에 손가락질이 아니라 용서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랑과 정성이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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