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8월 다섯째주 연중 제22주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 16.21-27)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김태근 신부. 서울대교구)
첫 본당 보좌 시절. 꾸르실료에 가기 전 고속터미널 건너편의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구경하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숫자 `316`만 적혀있는 좀 특별한 책이었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그 책을 집어들고 꾸르실료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커다란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남성 제 316차 꾸르실료 환영이었기 때문이다.
중년의 남성들이 한가득 모인 가운데 나는 요한 반에 속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또 한 번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산 그 책이
다름 아닌 요한복음 3장 16절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 3장 16절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인데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이토록 사랑하시어. 극진히 사랑하셔서 200주년 성서와 공동번역성서도
입을 모아 하느님의 사랑을 힘차게 표현한다.
그런데 나를 너무나. 이토록.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때론 당혹스럽고.
때론 불편하며. 때론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있다.
솔직히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이제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고(예레20.9)
싶은 심정일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마태16.23)는 것을..
달콤하고 향기로우며 편안한 행복만이 사랑이라 믿어온 나에게
십자가와 사랑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뜨거운 냄비 뚜껑을 맨손으로 잡는 어머니들의 단단한 손처럼.
사랑은 종종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영성체 때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의 손을 보며
그들이 살아온 삶을 가늠해본다.
이쁘고 매끄럽기보다는 거칠고 투박한손에서 어쩌면
평생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제물로 살아온 듯한 모습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주님.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당신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백합 > 주님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정관념의 오류 (0) | 2020.08.27 |
---|---|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0) | 2020.08.26 |
우리의 몸은 성전이다 (0) | 2020.08.25 |
늙음을 거부하고 젊음만 찬양하는 사회 (0) | 2020.08.24 |
성령에 따라 활동하라 (0) | 2020.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