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늙음을 거부하고 젊음만 찬양하는 사회

수성구 2020. 8. 24. 04:43

늙음을 거부하고 젊음만 찬양하는 사회

 

 

늙음을 거부하고 젊음만 찬양하는 사회

(이제민 신부)

 

 

어느 날 진찰을 받기 위해 종합병원 내과에 들렀는데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물었다.

아버님. 어디가 편찮으셔서 오셨어요?

아무리 우리나라에 호칭이 궁색하기로서니 나를 보고 아버님이라니?

묘한 기분을 느끼며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진료실에 들어섰는데

여의사가 나를 맞이하며 또 물었다.

아버님. 어디가 편찮으세요?

결혼하여 가 큰 자녀들까지 두었을 법한 이 의사에게도

내가 자기 아버지처럼 보일 정도로 늙어 보이는가?

 

 

신부님은 연세보다 많이 젊어 보여요..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이런 말을 듣던 터라 이들의 호칭은 나를 씁쓸하게 했다.

아무리 내가 젊다고 생각해도 이들에게 나는 늙은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전에 있던 본당에서 귀염을 받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찾아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신부님. 왜 이리 늙으셨어요?

신자들이 속을 많이 썩이나 봐요. 하며 호들갑이었다.

그럼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너희들도 어른이 되었구나.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서늘해진 마음을 감추려고 애를 써야 했다.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

아무리 옷을 젊게 입고 화장으로 감추려 해도 그것은

늙음에서 달아나려는 몸짓일 뿐 세월을 돌려놓지는 못한다.

내가 아무리 젊게 보인다한들 늙음은 속이지 못한다.

사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해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말은 젊은이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늙음은 인생을 온갖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답게 한다.

늙음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면

나이를 초월하여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 인생의 과제다.

이 과제는 자기 자신을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법을 터득한 자에게 채워진다.

동양 여행을 즐겼던 헤르만 헤세한테서 늙음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지극히 아름다운 여름도

가을과 시듦을 맛보려 한다.

나뭇잎이.

바람이 너를 데려가려 하거든

가만 있거라.

네 놀이나 하며 막지 마라.

가만히 두어라.

바람이 너를 꺾으면

바람에 실려 집으로 날아가리라.

(안셀름 그린. 황혼의 미학)

 

 

 

늙음은 삶이 신비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신비 속으로의 삶을 열어준다.

늙음을 받아들이며 영원한 안식을 향하여 사는 노년은

인생에 새 생명과 부활의 삶을 약속한다.

늙지 않는 기적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며 늙음을

받아들이는 기적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해야한다.

생로병사가 하느님의 창조물임을 받아들이는 기적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해야 한다.

하느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면 말이다.

 

(주름을 지우지 마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