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기 도 와 묵 상

[매일미사] 교황 프란치스코: 언제까지 그렇게 재실 건가요?! ‘만약에’에서 ‘네’로의 결단 - [2020년 4월 26일 부활 3주일 삼종훈화 중]

수성구 2020. 4. 27. 02:59

[매일미사] 교황 프란치스코: 언제까지 그렇게 재실 건가요?! ‘만약에’에서 ‘네’로의 결단 - [2020년 4월 26일 부활 3주일 삼종훈화 중] 

     

교황 프란치스코: 언제까지 그렇게 재실 건가요?! ‘만약에’에서 ‘네’로의 결단 -

[2020년 4월 26일 부활 3주일 삼종훈화 중]
https://youtu.be/Rtwsim3WtBQ




https://www.youtube.com/embed/Rtwsim3WtBQ


교황 프란치스코: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A%B5%90%ED%99%A9+%ED%94%84%EB%9E%80%EC%B9%98%EC%8A%A4%EC%BD%94+


 JIN SEULKI Tommaso d'Aqu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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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그렇게 재실 건가요?!: ‘만약에’에서 ‘네’로의 결단 -

[2020년 4월 26일 부활 3주일 삼종훈화 중]

내, 바로 여기가 갈림길입니다.
곧, 우리는 늘 '내' 주위만을 도는 것들에서 벗어나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과거의 실패나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들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일어난 여러 안 좋은 일들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네, 실상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일들에 대해 맴도는지요!
하지만 더 이상 이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남은) 인생의 보다 크고 참된 현실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은 살아 계신 걸요!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아울러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확실한 '현실'입니다.
(더불어 이 때문에) 우리는 남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하여, 밝고 긍정적이며 아름다운 현실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죠!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해야 하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내 것'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내 ‘하느님’의 현실로 넘어가야 하는 거죠.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언어 유희적으로 표현하자면,
'만약에 se'에서 '네 si'라는 단어로 옮겨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데) 과연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만약 그분이 우리를 구원시키셨다면,"
"만약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면,"
"만약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면,"
"만약, 내가 이러저러한 것들을 가졌다면..."

네, 이런 '만약에'는 늘 낙담과 불만입니다.
하여, 이러한 '만약에'는 우리에게나 남들에게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만약에'는 오늘 복음에서의 두 제자와 비슷하죠.
하지만 그들은 이내 '네'로 돌아왔습니다.
"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걸으셨습니다"라고 증언했으니까요.
네, 그들은 다음 날이 아니라 곧바로 그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가던 길을 되돌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역시
"네, 저는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테니까요.
사람들에게 유익할 테니까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네' 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럼요. 우리에게는)
'만약에'에서 '네', '낙담'에서 '기쁨과 평화'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낙담하고 있을 때, 우리는 기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네, 저럴 때) 그저 우리는 우울한 회색 속에 파묻혀 있는 셈이죠.
네, 슬픔의 회색 분위기 속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성장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디 '만약에 se'로 부터 '네 si'로
'낙담'에서 봉사의 '기쁨'으로 길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이러한 '만약에'에서 '네'로의,
곧 '나'로 부터 '하느님'으로의 변환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중략]...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삶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여정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걷고 있는 대로 되어 갑니다.
이에 우리는 '나'의 길이 아닌 '하느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하죠.
(다시 말해) 우리는 '만약에 se'가 아닌 '네 si'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여,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하면 직면 못할 그 어떤 어둔 밤이나
비약이나 뜻밖의 일이란 없음을 깨달읍시다.

이에, 말씀을 받아들이심으로써
당신의 온 삶을 하느님께 대한 '네'로 만드신
여정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이 길을 알려주시길 빕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영광송]

[마침 강복]
.
.
.
간혹 길을 걷다가 똥을 즈려 밟을 때가 있습니다. ㅡㅡ;;
그런데 이때마다
‘대체 내가 왜 이 똥을 못 봤을까?’
‘아, 나는 정말 바보인가봐, 똥을 밟다니!’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없던 걸로 만들지?!’
이러면서 그 자리에 계속 서성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런다면, 오히려 그 똥내만 더 나한테 배게 될 테니까요;;;

하여 오히려 그럴 때에는 한 시라도 빨리 슥슥 신발 닦고
더 많이 더 멀리 더 빨리 가던 길을 가는 것이
그 똥내에서부터 멀어지고 더 나아가 신발에 묻은 똥도 빨리 없애는 방법입니다.

한데, 이러저러한 우리 삶에서의 똥 밟은 날,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혹시, 여전히 그 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정말 쭈글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 앞에는 본래 가려고 했던 길이 여전히 놓여 있는데 말입니다.


영상출처
https://www.facebook.com/seulki.ji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