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제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기러기 아빠가 된 지 10년이 되어 갑니다.
어느 날 아내와 저는 최근 인기 있다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후에 그녀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곳에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베개를 하여 저와의 아쉬움을 달래던 중이었습니다.
아내가 이야기합니다.
“저 주인공 아저씨는 아무리 봐도 연기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
다른 배우들은 다 자연스러운데, 유독 저 아저씨만 그래.
매사에 멋있어 보이려고만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자긴 어떻게 생각해?”
약간의 공백이 흐른 후 저는 대답했습니다.
“처음으로 고백하는 건데, 사실 나는 밑의 자막을 읽느라 배우의 표정을
볼 겨를이 없어. 그래서 난 아직도 송강호나 설경구, 최민식이 지구상에서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생각해.”
또다시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아내가 말합니다.
“가슴 아픈 얘기군!
그럼 앞으로는 저 아저씨가 나올 때 글을 읽지 말고 표정 연기를 봐.
그러면 아마 내 생각이 날거야. 나도 필리핀에서 그렇게 할께.”
그 말을 끝으로 아내는 떠났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나온 30년간 그녀는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글을 빨리 읽지 못한다는 관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자기답다는 용기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1993년 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의 제목을 궁금해 하던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기초적인 영어를 모를 수가 있어?’라는 반문을 하지 않고,
늘 진지하게 답변해 주던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때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 노래의 제목을 번역하면, ‘~할수록’인 것 같아.”
그 이후 저는 ‘사랑할수록’이라는 곡을 작곡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내가 필리핀에서 다시 돌아온 날,
우린 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내에게 지나온 30년 동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얘기를 처음 꺼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스스로 나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사실은 당신이 나의 모든 걸 만들어 왔던 것 같아!
좌절의 어두움에 빠져있던 그 수많았던 날들에 늘 빛이었던 당신, 고맙다.”
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그것보다 숭고한 것이 과연 있을까요!
오늘도 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겨울비가 내리는 밤에 적습니다. ‘사랑한다고…, 영원히!’
김태원 바오로 /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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