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행복 가득한곳

이관순의 손편지|◈─……

수성구 2019. 12. 9. 03:25

이관순의 손편지|◈─……행복가득한곳

       


생을 끝낸 잎새들이 돌아가고자 시든 몸으로 누워있다.  


이관순의 손편지[84]

2019. 12. 09()

 

 

비로소 깨닫는 시든다는 말

 

 

어느 늦가을의 기억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들르신 어머니와 공원을

산책했는데 뜬금없이 세상이 참 헐거워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뭐가요?”

젊은 아들이 묻지만 어머니는 밍근한 웃음만 지어보이셨지요. 그때는

무엇을 말씀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야 그 미소의 뜻을 알게 됩니다. 가을 끝을 돌면서 저절로

깨쳐진 것입니다. 연이틀 추적되던 가을비가 그치자 문득 세상이 헐거워

졌다는 생각이 내게도 찾아든 것입니다.

 

단풍이 시들어 낙엽진 거리가 성글어 보이고 공원도 휑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잔디의 마른 잎 사이로 숭숭 바람이 드나듭니다.

북한산 계곡의 물소리가 수척해졌고, 젖은 돌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

얼굴도 열기가 식은 표정입니다.

 

가을 끝자락의 산하는 다 시들어 갑니다. 그 길을 걷다 문득 때늦은

어머니의 대답을 찾아낸 겁니다. ‘너도 살아보면 안다는 것임을. 시든다는

것은 돌아가기 위한 일이란 것임도. 한 생을 휘돌았던 뜨거운 피들이

빠지면서 전하는 마지막 언어가 시든다’ ‘시듦이라는 거지요.

 

우리는 1년이 훅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쉽게 말하지만 누구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성심을 다해 살았던 한 생이자 생애가 됩니다. 어느 시인은

낙엽을 보고 땅에다 맨몸을 뉘고 상처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온 곳으로 돌아가려는 세상에서의 마지막 지움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시듦이란 소임을 다한 생명이 자신의 삶을 거두는

일입니다. 그래서 잘 시들면 잘 거두는 것이란 말이 생겼나 봅니다.

 

세월의 속도감은 12월 들어 유달리 빠르게 느껴집니다. 엊그제 꽃이 피었다

했는데, 여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이 들더니

그도 잠시, 비바람에 낙엽을 떨어내고 이제는 앙상한 뼈마디로 남기까지

나무의 1년은 가쁘게 돌아온 시간뿐입니다.

 

지난 주말, 도봉산에 올랐다가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이 또 있습니다.

마른 낙엽을 밟다가 낙엽 밟지 말자는 생각을 한 거죠. 내가 누구의 등이

된 적이 있었나 하는 자성 때문입니다. 생애 마지막 그 쉼까지 빼앗으려는

탐욕스런 내 모습이 어른거려, 빗겨 걸었습니다.

 

어찌 성한 몸으로 피멍든 등을 밟으려 하나. 산행 때마다 나무뿌리 밟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무심코 밟고

가지만 그것이 생명에 가하는 야만행위라고 펄쩍뛰는 친구입니다.

 

나뭇잎이 돋아날 때의 그 풀 향기, 시들어 낙엽이 풍기는 냄새는 얼마나

구수하던가요. 푸른 잎 단풍으로, 낙엽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가슴에

위안을 주었던 잎새들의 생은 그래서 경건하기조차 합니다.


김동길 박사가 이런 말을 했지요.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모든 게

이해될 줄 알았는데, 실은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더라고... 나이가 들면서 나도 그런 걸 느낍니다. 넓은

길보다는 호젓한 오솔길이 좋고,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좋고, 살가움보다

무던함이, 질러가는 것보다 에둘러 돌아가는 게 좋습니다.

 

시든다는 것은, 힘줄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것은, 한 생을 휘돌아 나가는

생명들의 마지막 미사입니다. 시들어 마른 맨몸을 땅에 뉘이고 상처를

묻는, 숙연한 의례입니다. 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나를 휘감아가면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나도 이런 변화를 맞습니다.

이관순 (소설가)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