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못 받겠어요. 순교 못해요”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인간으로 거듭남을 보여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지 않으시고 ‘치유자’의 모습만 보여 주셨다면,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아마 기복신앙으로 기우는 인간의 본성을 자제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혜화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친구의 말이 너무 좋아서,
365일 새벽 미사를 다니며 360개 교리 문답을 달달 외워 세례 준비를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천작 쟁이는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사랑방에 가시어 “승님 이가 세례를 받으면 애비가 온대요.” 하고
말씀드리자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눈물을 글썽이셨고
“승님이 혼사는 내가 중매 안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묵인하셨습니다.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은 가정 방문을 열 번도 더 오시어
“꼭 천주교 신자하고 결혼해야 한다.”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주교 신자하고 연애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례를 받으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4남 2녀의 다섯째인 저는 죄지을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수녀님께 가서
“저는 세례를 받고도 또 죄를 지을 것 같아요. 세례를 받을 용기가 없어요.”
했더니 수녀님께서는
“죄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지어도 돼. 늘 회개하면 하느님이 반기신단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지! 내가 설마 칠 곱하기 칠십 번이나 죄를 짓지는
못하지.’ 하고는 세례를 받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 근심이 생겼습니다. 납북된 아버지를 뵙고 싶은데, 혹시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공산당은 천주교를 싫어하고, 그러면 순교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시 수녀님께 달려가서 이야기를 하자
수녀님께서 “순교의 은혜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야. 순교는 은혜란다.
은혜를 받으면 기쁘게 순교할 수 있어.” 저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은혜가 오면 모든 것을 기쁘게 할 수 있구나!’
저는 베로니카 수녀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아이에게 심오한 진리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도우시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억울한 일, 답답한 일을 당할 때
하느님께서 늘 보고 계시다는 것이 순간순간 힘이 되었습니다.
일이 잘되면 “그러면 그렇지! 내가 잘못되면 하느님이 창피하시지.” 라는
생각이 들며 절로 힘이 났습니다.
납북된 아버지를 그리워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분을 만났고, 안부를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세례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도원
홍성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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