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 이창호
지난 달력 한 장을 찢어 손바닥에 접어 올리니
손바닥 위에서 지난 5월이 너무나 작고 가벼워집니다
유리창에 물방울처럼 톡톡 웃음을 퉁기는 아침
알맞게 물이 오른 6월의 현관문이 열리자
펼쳐둔 종이의 여백을 열고 여름 나무들이 들어가 앉습니다.
한 잎 두 잎 그리움의 잎사귀가 늘어갈수록
종이 위에서 사연들이 더욱 푸르르 갑니다
당신, 지난 5월에는 달력 한 장의 무게만큼
편히 지내셨는지요? 여기 6월의 첫날 아침을
그려보냅니다
색다른 배경으로 깊어지는 창 밖 세상이
숲 속처럼 맑아지는 거리에서는 온갖 사물들이
밝은 조명을 단 아침 하늘 아래 주렁주렁
저마다의 녹음을 매달고 걸어다닙니다.
6월의 달력 / 목필균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
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6월 / 김용택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6월의 녹음은
고공을 꿈꾸는
새였다.
한사코 파닥이는 날개 짓
제 어둠의 그림자를
새까맣게 털어놓고 있었다.
우우
하늘을 우러러
어제보다 한 치씩
웃자란 목을 빼고
싱그러운 물빛 번쩍이며
새롭게 거듭나고 있었다.
6월 /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느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청이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 있다.
지금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한 폭의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앙
깨물어볼까
퐁당
빠져버릴까
초록 주단
넘실대고
싱그러운 추억
깔깔거리는데
훨훨
날아보아도 될까
6월의 장미 /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6월의 시
- 김남조 -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닷가도 싫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