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주 님 의 향 기 °♡。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복음: 요한 16,16-20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또 보고 싶다. 보는 것이 익숙해지면 만지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그렇게도 자주 만나고 또 만난다.
그러다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우스갯소리로 서로의 여우 목도리와 늑대의 허리띠가 되어준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는 법. 때가 되면 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다른 공간으로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몸의 눈으로 볼 수 없으면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손을 잡듯이 마음을 사로잡고, 팔짱을 끼듯이 마음을 껴안고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섞여 하나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간절하게 혹은 아프게 마음과 마음은 하나가 된다.
마음은 그래서 언제나 부드러운 살로 살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마음은 결코 돌처럼 굳어질 수 없다. 이 모두 두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볼 때와 마음으로 볼 때 사이에는 분명 시간의 차이가 있다. 이 시간은 양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간은 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순간의 차이가 수만 년처럼 길게 느껴질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수만 년도 순간이 된다.
보고 싶은 마음이 혹은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시간의 양을 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할 때’를 한 시간 동안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는 조금 있으면 제자들이 당신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나 얼마 안 가서 다시 보게 되리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얼마 안 가서’라는 말을 시간의 양적인 흐름의 차원으로, ‘보지 못하고’ ‘다시 보게’라는 말을 공간의 단절로 이해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과 만남은 시간의 양으로 측정할 수 없고,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의 만남은 천년을 하루로 만들고, 공간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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