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그 사내의 발돋움|─

수성구 2016. 3. 15. 02:31

그 사내의 발돋움|─ 감동글♡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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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내의 발돋움

여섯 번째 낙방이었다.
버스정류장 언덕에 다다랐을 때, 결국 나는
10년을 쏟아 부은 글 쓰는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졸업만 하면 어디 국어선생 자리 정도는 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뭣 하러 이 고생을 해. 정말 글은 죽어도 다신 안 쓴다.'
그때였다. 길 건너편 쪽에서 한 사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사내는 한눈에 봐도 몸이 꽤 많이 불편해 보였다.
남루한 옷차림에 세상사에 찌든 얼굴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 사내는 좀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그는 발을 들어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짧은 거리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마치 개그맨들이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쓰는 그런 모습 같았다.
그렇게 몇 번 신호등이 더 바뀌고서야
그는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온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헛발질처럼 보이지만 그는 분명 걷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던 것은
그의 몸 전체가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리만 움직인다고 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몸은 앞으로 가지 않고 발만 들었다 놓았다 하는 건
결국 제자리걸음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리와 함께
몸 전체를 앞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법이다.
그런데 그는 몸이 불편한 터라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만큼
몸을 앞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과연 내 꿈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을까?
아니다. 그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걷는 일 하나조차도 온몸을 다 써야 하는데,
나는 내 꿈을 이루겠다면서 고작 머리와 손만으로 해보려 했다.
온몸과 온 힘을 다하지 않고서는 꿈은커녕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으면서
당장 달리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조바심하고 힘겨워했다.
조금씩 아주 느리게 가고 있으면서
헛발질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일곱 번째로 신춘문예에 낙방했다.
가슴이 쓰리고 포기하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 이후 '포기'라는 말이 고개를 들 때면
그때 그 석양빛에 녹아내리듯 서 있던 사내를 떠올린다.

『그래도 계속 갈 수 있는 건 … 때문이다』
(김정희 외 지음 | 조화로운삶)

 

배경음악 : 교향시 바다 중 제2곡 '파도의 유희' - 드뷔시 // 마중물 가족 여러분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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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을 내어라.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하지 마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몸소 함께 진군하신다.
너희를
포기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신다."


(성서 신명기 31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