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가? 난 당최 뭔 말인지 알 수 있어야제."
꼬깃꼬깃 접은 흰 봉투를 내미는데 신협에서 날아온 영업정지 통지서다.
할머니는 망연자실했다.
신협에 예금한 천오백만 원은 남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판자촌에 들어와 살면서
폐지와 고물을 주운 돈 천오백만 원을
매일 꼬박꼬박 저축한 할머니의 전재산이라고 하셨다.
재개발을 코앞에 둔 판자촌을 떠나면 방을 얻을 돈인데
시중 은행보다 이자를 높게 준다고
신협 직원이 자꾸 권해서 올해 초에 신협에 맡겼다.
통지서에는 적어도 3개월 내지 5개월을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날 자초지종을 알아보러 할머니를 모시고 신협에 갔다.
이미 예금주들 때문에 난리통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할머니의 사정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헛일이라고 주위에서는 말렸지만
신협중앙회, 금융감독원, 국민권익위원회에
전화와 이메일로 할머니의 피해를 항의하고 따졌다.
정작 그들에게는 관리 감독이라는 책임을 물었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니 나 역시 부끄럽다.
그동안 내 곁의 수많은 폐지 줍는 노인 분들은 무심한 일상의 풍경이었지 않은가.
타인의 고통을 안락한 거실에서 지켜볼 때
나는 안전한 곳에 있다고 안심하지 않았던가.
뒤늦게야 내 이웃으로 성큼 다가온 폐지 줍는 할머니 앞에서
나도 나눔과 연대의 이름으로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느끼고 있으니…….
아! 그래서 타인의 고통과 안락한 내 거실 사이의 거리,
그 무심한 거리의 고통을 소설가 박완서 씨는 뒤늦게 깨닫고 고백했구나.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물론 남을 해친 적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다행히 할머니는 이웃의 도움으로 더부살이를 하시다가
꼭 3개월만에 천오백만 원을 찾아서 작은 방을 얻었다.
요즘도 절뚝거리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시는데
어쩌다 마트 앞에서 마주치면 두유를 사서 꼭 챙겨 주신다.
세상살이 쉬운게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두 마디 어설픈 말로
위로하기 보다는, 이런 할머니 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소박한 마음속에 숨어있는 작은행복!!!
아름답게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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