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언젠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느 학생이 내게 물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그 말은 어쩌면 학생보다는 나를 향해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