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는 흙이 좋다
가까운 도시에 사시는 분이었다. 여러 번 만났지만 아직 서로 이름을 모른다. 그분의 목적은 등산이지 내가 아니었다. 언제나 내외가 함께였는데 혼자인 것이 궁금했다. "저 아래 오고 있어요." 건강이 좀 나아진 듯 보였다. 그분이 먼저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저번 것과 같았다. 이게 몇 번째던가? 그대로 몇 년 더 갔다면 재벌이 될 만큼 한때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 그러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뇌경색 가운데서도 8천 명 중 겨우 한 사람이 살아나면 다행인 어떤 병에서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 죽기를 각오하고 기어올라간 오대산의 한 암자에서 비로소 '아, 이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 뒤로는 눈만 뜨면 늘 산을 찾았다는 것, 저 아래 산에서 산삼을 캐먹고 많이 좋아졌다는 것, 지금은 시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어서 빨리 여기 같은 산속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다는 것까지는 같았다. 뇌경색의 후유증일까, 왜 이분은 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돈 많이 가진 사람은 돈에 깔려 죽고, 재산 많이 가진 사람은 그 재산에 깔려 죽어요. 돈 벌려고 하지 말아요. 그냥 이렇게 살아요. 이렇게 사는 게 최고예요." 여기까지 듣고 나는 물 한 주전자를 떠왔다. 차보다 물을 내는 일이 많다. 물맛이 좋아 좀처럼 차를 끓이게 되지 않는다. 그것을 보며 그는 내게 물었다. "당신은 아마 모를 걸요, 이렇게 맛있는 물을 마시며 사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 줄?" 때로 잊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여기서보다는 일이 있어 도시에 나갔을 때 내가 참 좋은 곳에 산다는 것을 안다. 두 잔째의 물이 비어갈 때 그의 아내가 도착했다. "기어다니던 이 양반이 이제는 저보다 더 잘 걸어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은 부인의 얼굴에 땅벌이 날아와 덤볐다. 땀과 화장 탓이리라. 벌을 쫓으며 부인은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저도 관절염이 있어요. 좀 심했지요. 의사들은 도진다고, 잘못하면 큰일난다며 먼 길 걷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다짐을 하고는 했어요. 그래도 어떻게 이 양반을 혼자 다니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같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관절염이 나았지요."
『산에서 살다』 (최성현 | 조화로운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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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네 삶의 한창때에 건강을 지키고 너의 힘을 낯선 여자들에게 허비하지 마라.
( 성서 집회서 26 : 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