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기다리는 아버지
큰 딸이 출가한 후
이제
추석 명절이 되자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면서 문득
‘기다림’과 ‘나무’를 생각해보았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고
그냥 놔둔다면
생존율은 20%밖에 안 되기에
과거에 가을엔 육목일까지 만들었던 것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가 더 어렵기에
심는 것보다는
나무를 돌본다는 의미에서
‘육목일(育木日)’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무도
심는 것 보다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육목일까지 만들었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자식을 위한 부모의 돌봄은
끝이 없다.
새 차 A/S 기간은 1, 2년 정도지만
자식에 대한 A/S는
기한이 없이 평생 같이 간다.
부모는
자식의 내일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다 동원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선
기다려 주는 일에는 선수가 다 되었다.
잘못할 땐 잔소리도 하지만
실상 모든 부분에서
부모가 하는 일이란
아니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다림 밖에 없다.
알아도 모른 척
부모가 기대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다 포기해도
자식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기에
속상해도
어떤 불이익이 와도
끝까지
자식을 떠나지 않고 기다려주기에
부모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모든 덕목은 기다림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세상만사
기다리지 않고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물며 자식은 더 더욱이나
기다림 없이는
바른 길은커녕 외적인 성장도 불가능하다.
부모의 기다림은
고스란히
자식에게 유전이라도 되듯
그들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림을 반복하는 것은
기다림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서부터 기다리기 시작하여
밥을 기다리고
차를 기다리고
일하면서 수 없이 기다리며
사람을 기다리고
눈을 감을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러한 기다림이
우리에게
기쁨과 아픔이라는 동전의 양면성이 있음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가 아니고서야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자연의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체득하기 때문이다.
물론
없는 사람은 많은 것을 기다리지만
부유한 자도
또한
더 많은 것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기다림은
적어도 죽음의 강 앞에 서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일생을
기다리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때론
이루지 못한 소망을 아쉬워하고
첫 사랑 같은 만남을
되새기면서
막연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기다림은
어느 덧 인생의 일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기다리면서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기다림의 덤이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느라
이제 보니 인격이 바뀌고
자식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의미도 모른 채
무료하게
아니 할 수 없이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였던
시간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다리는 시간들은
한없이
무속하기만 한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기다리는 시간처럼
위대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시간은
어리석은 자에게까지
세상이 얼마나 공평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가장 좋은 질서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다려 주는 것과
믿어 주는 것 밖에 없었는데
이 두 가지가
내 자식을 바꾸어 놓았고
이 두 가지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기다림이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성장하는 시간이었고
성숙케 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기다리면서
자신을 넘어 비로써 남도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리면서
흐르는 눈물 속에서 생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기에
이제
어떤 일을 만나도 서두르지 않고
누굴 만나도
두렵지가 않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다림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삶의 지혜를 안겨주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염려에 대한 개념을 바꿔주었다.
심리학자는 모든 인간은 기본적인
4가지 염려를 하는데
곧 상실, 고난, 실패
그리고
죽음에 대한 염려를 하느라
과거의 망상에 사로잡혀
일상의 기쁨도 모른 채
내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다가 깨달은 지혜란
지난 과거나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염려대신에
차라리 오늘 이 순간에
힘을 다하며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이
근심걱정을 극복하고
내일을 대비하는
최선의 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감사하고
지금 사랑한다면
서두르지 아니하고
긍휼의 눈물을 흘릴 수가 있고
누구와도
하나가 되어가기에
자신보다 이웃을
땅보다 하늘을
오늘보다 내일을 위하여 살아갈 때
내 자식이나
내 이웃은 기다림 속에
흘린 내 눈물을 알고
하나 되길 원한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기다림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기다림의 깊이가
사랑의 깊이가 되고 있다.
아직도 내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깨닫기까지
익숙해지기까지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같이
기다림의 문이 필요하다.
내 모든 허물과 약점을 아시면서도
여전히
나를 기다려주시는
그 분처럼
내게
기다림의 문이 필요하다.
내가 큰딸을 기다리듯이
그가 날 기다리기에
보름 달 같이 넓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는
행복하다.
2015년 9월 27일 추석 날에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이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