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왕방강 잘고라줍서
1. “무지한 탓으로”(사도 3,17)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구토(嘔吐/ Nausea)」라는 책을 통하여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게 되는 무의미성(無意味性)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자신들이 기대하고 노력한 만큼
그들의 삶이 풍요롭지 못함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밑바닥에는 자신들의 ‘무지(無知)’가 자리하고 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인간은 이 세상을 자기 손안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1요한 2,4)
얼마 전 고백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난청 3급으로 판정받은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입술을 보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알린 그 신자분과 저는 칸막이 때문에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자 분은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그 자리에서 분명히 체험하셨을 겁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분을 향하여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만일 우리들 마음이 닫혀있고 돌처럼 단단하다면, 우리들은 그 돌들을 손에 쥐고
던지려 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예! 예! 예! 저는 구원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생각한 길로 가렵니다.”
이처럼 우리도 자주 ‘하느님의 길’에 대하여 진저리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3.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제주도 절물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는 “왕방강 잘고라줍서.”라는 환영 문구는
“와서 보고 가서 잘 이야기해 달라.” 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이 실재(實在)
임을 “나를 만져 보아라.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라는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라는 말씀으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려고 준비하신 우연(偶然)이 아닌 필연(必然)적
사건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하시면서,
우리들도 당신 제자들처럼 부활 신앙의 증인이 되라는 소명을 주십니다.
4. 교형자매 여러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주일에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를 공포하셨습니다. 이번 희년의 주제는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
(에페 2,4)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의 삶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에 하느님께서 주실 꿀 (하느님의 온유하심과 선하심의 상징)
을 담기 위하여” 그분의 자비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의 풍성한 자비 안에서 충만해지시길 빕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정연정 (티모테오)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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