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성희
프롤로그
"엄.....마....."
성희는 냉정하려 했으나 엄마를 부를 때 "마"에서 울음 섞인 비음으로 변했다.
엄마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왜 그래?"
엄마는 딸의 다음 목소리를 기다렸다.
"아냐....지금 집에 갈게."
"어디니 거기?"
"학교 안인데 그냥 전화했어."
"면접 봤니?"
"응."
"........."
엄마는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지만 잠시 난감한 마음이 교차되어 할 말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끊을게. 곧 갈게 엄마."
성희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엄마는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바로 딸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기 시작 했다. 그러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몇 시간 전이었다.
성희는 후---!하고 숨을 내쉬며 좌측에 교수실 문이 나열해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이제 몇 미터만 더 가면 자신을 기다리는 부총장을 포함한 몇 사람의 면접관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H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성희는 이 K대학원에 편입 했는데 대학원을 다니며 조교의 일을 하게 되면 학비를 면제받게 되는 특례가 주어지기 때문에 추천서를 받아
신청하게 되었고 지금 면접을 받기 위해 가는 중인 것이다.
"하나님도 참...왜 날 자꾸 시험 보게 하시는지 몰라."
성희는 중얼거리며 면접 실을 향해 걸어갔다. 마음이 졸인 탓이다. 학비....... 성희에게는 큰 짐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번다는 것은 엄두가 안 나는 일이며 우선 시간이 없었다. 집안 사정도 어려웠고 특별히 누군가에게 도움 받을만한 기억도
흐리다. 물론 친척이야 몇 있고 부모님과 의논하면 어떡해서라도 납부 할 수는 있겠지만 부모에게 부담을 안긴다는 것은 성희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돈이 없다. 엄마는....당연히 있을 리가 없고.... 그래서 이 면접을 무난히 통과 하는 것이 성희의 큰 과제인 것이다. (나만이 아니다. 이 땅엔 수많은 나와 같은 사정의 딸들이 많을 거야...) 그런 마음이 들자 성희는 또 한 번 호흡을 푸-하고 내뿜는다. 면접 받는 곳은 복도 끝에 있었는데 문을 여니 작은 소극장의 내부가 눈에 들어 왔다. 작은 무대에는 장방형의 기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고 의자는 다섯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성희가 들어 간 강당 안에는 성희 외에 이미 세 명의 남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아마 성희와 같이 면접을 보기위해 온 학생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다소 의젓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책을 읽고 있는 학생도 있다.
(책이 눈에 들어올까?) 성희는 자신의 입장에서 가늠 해 본다. 손목시계를 보니 면접시간 2분 전이었다. 성희가 시간에 아슬아슬 맞춰 오게 된 이유는 오다가 잠시 한 눈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학교 건물을 향해 올라오다 보니 작은 숲이 꾸며져 있었고 그 샛길 따라 저 편에 작은 동산이 있었던 것이다. 성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 길에 들어섰고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더니 앉을만한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그만 동산 위에는 이엉으로 엮은 지붕 밑에 예닐곱 사람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는데 성희는 감탄하며 바라보다가 그 뒤쪽을 보니 사람 한 명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 것이었다. 성희는 그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상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내가 조교가 된다면 매일 이 바위에 와서 명상 하리라...
그리고 얘기 하리라....무엇이든 생각 나는 대로 얘기 하리라...아무도 듣지 않아도...).
성희는 상상으로 읊조리다가 웃었다. 국내 가수 팀의 노래를 순간 흉내 냈기 때문이다.
이윽고 부총장인 홍영미 교수와 함께 세 명의 면접 담당 교수들이 입장해서 자리에 착석 했다. 면접 받으러 온 학생들은 객석 여기저기에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다. 조교자리는 하나인데 네 명의 학생이 와있는 것이다.
(커트라인 2.5 대 1 !!)
성희는 그 들이 눈치 못 채게 슬쩍 훔쳐본다. 그들도 성희처럼 추천받은 이들 중에 하나일 것이고 만일 추천서 필요 없이 지원자를 모집 했을 경우 경쟁 상대가 더 많아졌을 터이다.
조용한 가운데 면접이 시작 되었다. 성희는 교수진 쪽에 있는 백보드 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오늘 면접 받을 명단이 적혀 있었는데 한 여학생과 남학생은 여기 본교 출신이었고 나머지 남학생은 전통의 명문대 출신이었다. 성희는 마음이 조금 어두워 졌다. 자신도 약간 없어졌고.... 질문과 답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조용한 소강당 안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대화의 내용을 들을 수가 있었다. 본교 출신인 남학생이 먼저 면접을 한다.
"우린 구면이지요?!"
홍영미 부총장이 남학생에게 미소 짓는 모습이 보인다. 성희는 좀 걱정스럽게 그 모습을 바라본다(내가 왜 이러지? 상상을 비약해선 안 돼!). 남학생은 온화한 미소로 화답하며 질문에 응한다.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 교육자의 자세이거늘....면접실 분위기는 원래 딱딱해야 되는 것 아냐?) 성희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으나 그게 어려워 냉소적으로 웃었다.
(속으로).
두 번째는 여학생의 차례이다. 본교 출신이라 그런지 먼발치에서 본 실루엣도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았다. 남자 교수님이 한마디 하시는 것 같더니 바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저 자리가 어떤 자린데 저렇게 경박하게 웃는 모습이라니....) 성희는 속으로 혀를 찬다.
세 번째 면접 대상자 때는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타교 출신이지만 국내 수재들의 집합지라는 그 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엄숙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했다. 두런두런 면접이 끝나는가 싶더니 저런! 성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교수들 중에 한 분이 일어나시더니 그 남학생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네 번째 마지막으로 성희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녀는 조심스레 탁자로 다가가며 긴장 된 숨을 폭 쉰다. 예전에 봤던 영화 플래시 댄스의 여주인공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이린 카라의 노래에 맞춰 율동하던 그 멋있었던 라스트 신 모습....(처음엔 실수로
미끄러졌었지....)
부총장의 모습은 차가웠다. 아까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표정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볼 수 없을 만큼. 남자 교수님들도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성희는 침착하려 애쓰며 교수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해 내려갔다. 이윽고 네 분들은 질문을 모두 마쳤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끄덕인다. 성희는 기분이 석연찮았다. 아무래도 아까 그 세 명의 학생들에 비해 많이 꿇리는.....아니!!- 아니죠! 이런 경박한 표현은 취소이고 아무래도 자신의 조건이 매우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성희다.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는지 간지러워서 왼 손을 살며시 들어 올리려는데 부총장이 안경 너머로 성희를 치켜 올려본다. 성희는 뜨끔해 서 동작을 그만 했다. 부총장님이 천천히 묻는다.
"만일 김성희 씨가 조교 일에 동참하게 되신다면..."
"넷!!"
성희는 난생 처음으로 씩씩하게 차려 자세를 취했다.
"휴일이나 명절 때에도 학교에 나와 주실 수가 있습니까?"
"........???....!!"
성희는 순간 정신이 ‘번쩍’났다(아니 그 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지금 수 백 만원의 학자금이 걸려 있는 이 와중에?!!). 부총장이 낮은 저음으로 목소리를 깔았다(적어도 성희의 느낌으로 볼 때). "조교란 교수의 분신 같은 존재여야 하니까요." 여덟 개의 눈동자가 성희를 향하고 있었다. 그 때 성희는 갑자기 눈앞에 뽀얀 안개가 떠오르는 듯 이 어지러움을 느꼈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교수들은 앞에 서있는 여학생이 머뭇거리자 의아해 했다. 성희는 더듬거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일요일 날은 좀 곤란 하거든요...."
교수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성희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미처 그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아주 작은 교회구요.... 주일 날 아이들의 선생님 역할도 해야 됩니다...."
성희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갑자기 비감한 심정이 되어야 하는지...하지만 거짓으로 말 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세 명인데 모두 결손 가정의 아이들입니다.....저희 교회 신도 수는 모두 스무 명이 채 안 되지만...나이 드신 목사님 외엔 저밖에 없거든요...”
성희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기가 부끄러워 인사도 변변히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곳까지 왔을 때 엄마 생각이 났던 것. 그래서 전화를 했지만 막상 할 말을 잃었던 것. 성희는 공중전화 박스를 나와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어느 덧 저녁 시간이 되었는지 서쪽 높이 떠 있는 구름들이 석양을 받기 시작 한다. 추분도 지났고 해서 그런지 체감온도로 가을을 느끼게 한다. 아니면 지금의 기분이 서늘한 것인지.... 성희는 오던 길을 따라 올라 갔다. 어쩐지 아까 면접 받으러 가기 전에 들렀던 그 동산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서이다. 이번에는 아까 그 길 따라 가지 않고 반대로 동산 길을 찾아올라 갔다. 왜냐면 혹시라도 그 교수님들과 마주칠까 조심스러워서이다.
동산수풀은 아직도 우거져 있고 석양이 비치기 시작한 그 이엉지붕과 바위가 있는 분위기가 고고해서 혼자 앉아있기에는 그만이었다. 바위에 앉자 이제 긴장이 풀리고 슬퍼지기 시작 했다.
성희의 지난 대학 생활은 성희가 다니는 교회와 아주 많은 이야기가 이어져 있다. 올해 팔순에 가까운 교회의 목사님은 성희가 초등학교 때부터 따르던 분이다. 중학생 때 교회에 오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줄 때엔 까만 머리 앤이라고 불러 주었고 국문과에 입학 했을 때엔 여자 세종대왕이 되라고 축하해 주며 환하게 웃어 주던
목사님이다. 그리고 모자란 등록금까지 채워주신 기억도 난다. 아니, 잊지 않고 있는 기억이다. 성희와 목사님이 계신 교회는 아주 특별한 관계이다. 그런데.....십 년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던 주일과 겟세마네기도 시간인 수요일 저녁을 빠져야 한다면 성희에겐 아주 곤란한 일이다. 그 녀는 상심에 젖어 들었다. 세 명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넘어 설 자신도 없었고 부총장님의 마지막 질문에는 답 할 말을 상실 했다. 한 가닥 남은 희망을 잃어버린 상실감이란 눈물로서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성희에겐 눈물밖에 없었다. 목사님과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애처롭게 떠오르자 성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말았다. 석양의 그림자가 성희의 작은 등 뒤에서 빛을 잃어 갈 무렵 그녀의 입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예수님...이 시간이 싫어요....시간을 건너뛰게 해주셔서 지금의 이 기분이 없어진 시간 속에 있게 해주세요....성희는 울고 있다. 울면서 기도 하기는 처음이다. 엄마가 아팠을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책임이 묻고 싶어졌다.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조교자리를 놓친다면 난 어떻게 대학원에 존재 할 수 있을까? 목사님과 아이들을 보며 어떤 힘으로 버틸 수 있을까? 성희는 드디어 부르짖고야 말았다.
"예수님!! 예수님이 책임져 주세요!! 이 뜻이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 뜻대로 하세요!"
그렇게 부르짖으니 눈물이 더 나왔다. 그래서 소리 내어 울었다. 성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하나님이었고 그 녀는 아직 스물 한 살의 여린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 녀는 동산을 떠나면서
중얼거렸다.(그래도....그 자리에서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어.)
엄마는 요즘 딸의 태도에 눈치 둘 곳이 어렵다. 외출하고 와서도 웃긴 웃는데 썩 밝은 웃음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우울한 표정이
아닌데도 자세히 느껴보면 사실 우울해 보이는 것 같고 ....이 계절이 지나야 진학 시즌이 오겠지만 엄마는 딸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어 조용히 기도하는 딸의 모습만 볼 뿐이다. (아무래도 쟤....떨어 졌나봐....)엄마의 생각은 당연히 이랬다.
"가만 있어봐- 머릴 움직이면 약을 넣을 수가 없잖아. 자- 자아..."
성희는 덕이의 오른 쪽 눈에 안약을 넣어주고 있었다. 덕이란 강아지 이름 이다. 아주 작은 강아지였다. 주일 날 아침 오전 일찍 교회에 온 성희가 교회 안팎을 청소하고 난 다음 강아지 집 앞에 앉아서 흐릿한 강아지의 눈을 들여다보고 혀를 차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
자전거를 끌고 오는 한영이 성희의 등 뒤에서 인사를 한다. 성희가 뒤를 돌아보고 웃으며 답한다. 낮엔 학교에, 밤엔 제철소에 다니는 27살의 이 청년은 매 주일마다 교회에 참석하지만 평일에는 나오기가 힘들어서 노 목사님에게 항상 미안해한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쉬는 일요일 아침에도 조금 피곤한 모습이다. 자전거 앞에는 종이 쇼핑백이 든 광주리가 달려 있었는데 쇼핑백이 뚱뚱한 것을 보니 필경 아이들과 교회를 위해 가져 온 것 같았다.
"뭐해?"
성희가 오빠라고 부르는 청년이 자전거를 세우고 성희 옆에 앉아 강아지를 같이 바라본다.
강아지의 오른 쪽 눈은 실명 된 상태다. 교회 근방 동네 골목길에서 쓰러져 있던 것을 한영이 데려 온 지 이제 두 달 정도 되는 것 같다.
"오빠가 살려낸 강아지야."
한영이 강아지를 가만히 본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한 쪽 눈은 탁했다.
"누가 발로 찼는지 몰라도 아주 독하게 찼나 봐- 눈동자가 완전히 감겨져 버렸어."
한영은 강아지를 가엾게 바라보며 성희에게 말은 건다.
"조교...면접 받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됐지? 기도 많이 했지?!"
한영이 성희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몇 안 되는 교회의 성도들은 성희의 이번 조교 면접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고 성희를 위해 모두 기도를 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하물며
성희의 교회사랑에 대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한영이 제일 많이 성희를 위해 기도를 했다. 성희는 웃음 띤 모습으로 강아지의 눈에 안약을 다 넣어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화단에 물을 주기위해 물뿌리개를 집어 든다. 그리고 한영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한 소절의 노래를 불렀다.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한영은 성희의 눈동자가 영롱히 빛나는 것을 보았다. 성희는 한영을 마주보며 말한다.
"오빠- 난 결코 두드리거나 구하지 않아. 또 기다리지도 않고."
"?"
"난 이미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거든. 이렇게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이렇게
강아지를 돌보는 것, 조금 있으면 교회에 오는 아이들을 생각 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 모든 것을 그 분이 주고 계셔. 그런데....내가 뭘 더 두드리고 구해야 해?"
한영은 성희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구하는 것을 생각 했다. 가족을 위해 좀 더 나은 수입을 원했고 가난한 교회를 위해 조금만 더 물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성희는 팔짱을 끼고 하늘을 보며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며칠 후 성희는 엄마를 통해 등기 우편을 받았다. K대학원에서 정식 조교 임명장을 보내 온 것이다. 성희는 기가 막혀서 K대학에 전화를 걸었다. 용건을 들은 직원의 담백한 답변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통지서 받으셨지요?! 날짜대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성희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타진 한다.
"저어...그 날 면접 때 계셨던 그 교수님들을 모두 만나 인사드리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가능하고말고요. 부총장님하고 그 세 분의 교수님들은 매일 아침 학교 내에서 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이라고요- 찾기 쉬워요."
성희는 조용히 수화기를 놓은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도를 올렸다.
"예수님....그 때 대든 것 용서해 주실 거지요?"
이엉으로 엮은 지붕 밑엔 홍영미 부총장과 세 사람의 교수들이 앉아 있었다. 각자의 무릎 위에는 성경과 노트가 포개져 있다. 그 들은 환담 중이다. 교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 날 그 학생이 저기 앉아 있었기 때문에 우린 숲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지요."
여교수가 말을 받았다.
"난 놀랐어요. 그 학생에 대해 의논하려고 여길 왔는데 어쩌면 그 주인공이 여기 앉아 있었을 줄이야..."
"난 그 학생의 기도소리를 듣고 당장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어요. 우는 모습이 너무 가여워서...."
"우리의 선택이 그 학생에게 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군요."
부총장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여 말했다.
"나의 무책임한 질문이 그 학생의 마음을 슬프게 했어요."
그 들은 잠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조용히 손을 모으고 묵상을 시작했다.
마침
'백합 > 묵상글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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