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실이 익을 대로 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에 깃들일 것입니다.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밤중에 눈을 뜨고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러이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왔다갔다 걸어 다닐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슬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
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
하지만 그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낙하(落下)를 무한히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 R.M.릴케 /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