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글방

가을입니다

수성구 2022. 9. 27. 05:07

가을입니다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실이 익을 대로 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에 깃들일 것입니다.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밤중에 눈을 뜨고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러이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왔다갔다 걸어 다닐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슬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

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

 

하지만 그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낙하(落下)를 무한히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  R.M.릴케 /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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