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기도
(이해인 수녀)
하느님
오늘은 몸이 많이 아프니
기도가 잘 안 되지만
되는대로 말씀드려 봅니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이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 거라 생각하면
종일토록 우울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스스로 사물을 분간하며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꼭 허락해 주세요
누가 무얼 물으면 답해주고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온전히는 아니어도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병명 없는 통증도 순하게
받아 안을 테니
오랜 세월 길들여 온
일상의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건강과 자유는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그동안 내내
남을 위해서만 기도했으니
오늘은 좀 이기적인 기도를
바쳐도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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