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세 마리의 개구리가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그중의 한 마리는 이것이
운명이라 생각하여 체념하였고,
또 한 마리 개구리는 도무지 우유통을
벗어날 수 없다면서
한 숨만 쉬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세번째 개구리는 우유통에 빠진
현실을 직시하고 코끝을 밖으로
내놓은 채 침착하게 헤엄을 쳤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개구리의 발끝에
무엇인가 닿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가 헤엄을 치는 동안 우유가
굳어 버터가 되었기에
세번째 개구리는 무사히 우유통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운명보다 무서운 것은 체념이 아닐까요?"
장용철 시인의 글로 알고 있다.
살다보면 어려운 순간이 오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안 믿는 사람은
나의 운명이 이런건가! 하고는 쉽게
자포자기하고 절망하고 체념한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운명과 예정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의 참 부모이신 하느님께서
그런 상황에서 자식을 그냥 내버려
두시겠는가! 우리 신앙인은
운명의 이야기를 하느님의 섭리의
이야기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시고,
미래까지 예지하시는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염두에 두시고
지금 이순간의 고통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안배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러기에 스스로
<조포맨>(조물주가 포기한 사람)이라고
비하내지는 폄하할 것도 없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길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에는 홍해가 놓여있고,
뒤에는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하는
진퇴양난,사면초가의 순간에
모세를 원망하고 대들었지만,
주님께서는 구원은 당신께로부터
오기에 당신만을, 하늘만을,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모세가 들고 있는 믿음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게 하신다.
그렇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 길이 있다.
우리는 하나 밖에 없는 구원자이신
주님 이름에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의탁하여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