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 <사랑의 온기가 감도는 거룩한 가정♣>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콜로 3,14)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
가정은 하느님을 만나는 터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고 강생의 사랑을 체험하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인간은 가정을 통해 성장하며, 사랑으로 맺어지는 가정은 모든 인간관계의 표상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의 기본세포인 가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결손가정, 이혼가정, 다문화가정, 실직가정, 알콜중독자가정, 난민가정, 가정폭력, 미혼모 문제 등 수많은 가정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들에서 길을 찾아봅시다.
부모들 중에는 자녀를 낳아 키우느라 고생하고, 학업을 마친 뒤에도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 자녀들 때문에 힘들고, 출가시킨 뒤에도 손자 손녀 봐주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끝없이 요구하고 불평하며, 치매에 걸리고 병든 부모를 짐스러워 하고 업신여기며 외면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연로했을 때 잘 보살피고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말며,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고”(집회 3,12-13), “편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3,6) 부모는 하느님의 생명을 전달해주신 으뜸가는 은인들이기에 마땅히 공경해야겠지요.
한편 바오로 사도는 가족 상호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은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콜로 3,18-21) 가족 관계의 뿌리는 사랑입니다(3,14).
혈연관계나 한 지붕 아래 사는 것만으로 성가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연락도 않고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은 채 무관심하게 살아간다면 남남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혈연관계이든 아니든 한솥밥을 같이 먹고 삶의 애환과 고통을 사랑으로 함께 나누는 '식구'들이 진짜 가족입니다. 제아무리 부유해도 대화도 삶의 공유와 나눔도 없으며 폭언이 오간다면 얼마나 비참한 가정일지...
나자렛 성가정은 마리아의 혼전의 구세주 잉태로 어려움을 안고 출발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을 때까지 숱한 고난을 겪습니다. 그들은 본향인 유다 지방 베들레헴을 떠나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가 이주민으로서 노동하며 살았고(루카 2,4), 이집트로 피신해 난민생활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마태 2,13).
그런 중에도 마리아와 요셉은 평범한 서민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온갖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며, 아기 예수를 튼튼하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도록 양육하였습니다(루카 2,40). 어린시절 예수님께서도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1,50).
우리도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무엇보다도 기도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지닌 가정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가족이라면 서로 따뜻한 관심을 갖고 배려하며, 서로 신뢰하며 존중하고, 삶의 애정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고통과 시련을 함께 견뎌내고, 잘못과 실패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랑의 기다림이 있는 가정이 성가정입니다. 사랑의 온기가 감도는 성가정이 되어 세상을 밝힐 수 있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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