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감동의 스토리

여자가 아닌 우리의 어머니

수성구 2021. 12. 12. 05:28

여자가 아닌 우리의 어머니

 

여자가 아닌 우리의 어머님 

.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육이오 전쟁이 났다.

.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

 

일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로 씌어 주셨다

 .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개천에 가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삼일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 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고 다른데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서른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갔다.

.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마디가 <쌀자루는 어디갔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 하시며 우셨다.

.

 

그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입니다.

이글 속의 어머니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가 되십니다.

.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칭찬 한마디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 동덕여대 아동학과 교수 우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