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루카19,1-10) - 신부님 복음 해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2~4)
'자캐오'에 해당하는 희랍어 '작카이오스'(Zakcaaios; Zacchaeus)는 '순결한'
(pure),'무죄한'(innoce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작카이'(zakai)에서
유래되어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캐오는 그의 직업이 당시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허가받은 도둑'인
세관장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세관장'에 해당하는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a chief tax collector)
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아르코'(archo)와 '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명사
'텔로네스'(telones)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당시 예리코는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늘 머물러 있었고,
세관원들은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일이 세금을 징수한 게 아니라, 그곳 유대인들과의 임대차
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고,
그들 세리(세관원)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세관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루카 복음 19장 2절에는 세관장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말한다. '부자'에 해당하는
'플루시오스'(plusios; was rich, wealthy)라는 표현은 그가 단지 잘먹고 잘사는
정도가 아니고,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식민지 생활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것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그가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카 복음 19장 3절에 '그가 ~ 애썼지만'에 해당하는 '에제테이'(ezetei;he sought)는
'집요하게 찾아'라는 뜻이 있는 '제테오'(zeteo)의 미완료 능동태이다.
희랍에서 미완료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자캐오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 뒤에 '보려고'로 번역된 부정사 '이데인'(idein; to see)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 위해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캐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장애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환경적 장애로 말미암아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했음을
말해준다.
자캐오는 자신들을 경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죄도 사해주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러한 외롭고 수치스런 상황에서
구원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자캐오는 가까이에서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 요인, 즉
수많은 군중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자신의 키가 작음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첫째로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인 예수님 보다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가'로
번역된 '프로드라몬'(prodramon; he ran)은 능동태 분사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더불어, 결단을 내린 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강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갔다'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and climbed up)는 자캐오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한편, 자캐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코모레안'(sykomorean;
a sycamore-fig tree)는 루카 복음 17장 6절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뽕나무'; '모폰';
mopon)와는 다른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이집트 무화과 나무', '시카모어 무화과나무', '백뽕나무'로 불리는데,
잎사귀는 뽕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며, 가지가 사람이 올라가기
쉬운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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