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고 예수님 앞에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이르셨다.
(마르 12.28-34)
다리 꼬고 예수님 앞에
(이미자 수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올해로 27년째 이태리에서 살고 있다.
이 긴 시간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수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또 이태리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 수녀님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즉시 판단하고 계산하기 바빠진다.
경당에서 다리를 꼬고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모습.
두발을 쭉 뻗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교육이 안된 거야.
저 자세로 기도하면 곧바로 꿈나라로 가겠네...싶은데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님의 현존을 가장 가깝게 느껴야 하기에 가장 편한 자세로 기도한단다.
미사 중 거양성체 순간
`푸앙~~코를 푸는 건 정말 최악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동양 사람들은 빨리 코를 풀지 왜 지저분하게 훌쩍이냐고 한다.
편견 없이 사랑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머리로는 쉬운데 내 삶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고민하다가 수녀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적어보기로 했다.
베르나뎃다 수녀님은 양로원에서 인기 최고다.
백 번도 더 들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쳐 준다.
멜라니아 수녀님은 어찌나 꼼꼼한지 내가 다듬고 버린 야채 꽁다리로
다음날 야채 스프로 만들어냈다.
이 장점 리스트를 쓰다 보니 싫었던 수녀님들에게 오히려 고맙고 미안해졌다.
1702년 설림된 우리 수도회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선교하는데
18년 동안 종신서원 준비반에 동참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수녀님들의 언어와 문화 차이. 선입견 때문에
많은 오해들이 생겨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수녀님은
키 크고 잘생긴 샌부님이 이태리 방식의 포옴과 입맞춤으로 인사를 하자
혹시 나를 좋아하나?
밤새 분심이 들어 잠을 못 잤다고 해 처음엔 웃어넘겼다가
잘 이해되도록 설명해 주었다.
원장 수녀님이 아프리카에서 온 수녀님에게 음식을 남김없이 잘 먹는다고 칭찬했더니
슬픈 표정을 지어 당황스러워했다.
자기 부족에게 `다 먹는다`는 말은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두지 않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준비만 수녀님들은 내가 시간에 너무 철저하고 빈틈을 주지 않아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각오하고 온단다. 실제 나를 만나면 누그러지지만
한국 사람 모두가 그러면 숨 막힐 거라며 한국 선교는 안 갈 거라고 한다.
누군가에는 긍정의 사인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부정이 되어서
생기는 오해들은 그때마다 대화하고 이해해 가면서 공동체의 삶이 이어진다.
이런 삶이 계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게 바로 자매들 서로 간의 사랑이다.
이 뻔한 말씀이 왜 나의 일상이 되지 못할까~~~
"Dance of Leaves - Fariborz Lac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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