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는 거룩한 제단이 있는 곳에서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10. 어디에서 거행하는가?(「가톨릭 교회 교리서」 1179~1199항)
전례는 거룩한 제단이 있는 곳에서
한때 ‘전례의 토착화’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일반 대학 다닐 때 가톨릭학생회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축제 때 학생들이 신부님을 설득하여
선교 차원에서 학교 큰길 중앙에 제대를 차려놓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느낌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전례라기보다는 ‘쇼’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경하며 지나가는 학생들도 별로 감명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전례를 거행할 때 ‘어디에서 하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에서는 축성된 성당에서만 전례를 거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전례가 거행되는 장소는
“하느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는 곳”(1197)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성령’이라 해도 됩니다.
선물은 예쁜 포장지에, 보물은 보물 상자에, 음식은 깨끗한 그릇에 담겨야 합니다.
전례는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을 받는 시간인데, 그 은총을 받는 장소가 길거리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은혜로 성령의 성전”(1197)이 됩니다. 가장 완전한 성전은 성모 마리아셨습니다.
그분의 깨끗함 때문에 완전한 은총 자체이신 분이 그분의 제단 위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제단이 당신 몸이고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신 분이 잉태되셨습니다.
제단이 없다면 손을 내밀지 않으며 선물을 받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에 ‘성 바오로 대성당’에 들어가면
처음엔 그 크기에 압도당합니다. 그러다 성당의 규모에 비해 제단이 너무 왜소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오로 대성당은 여러 차례의 화제를 겪어야 했는데 성당은 증축하면서 제단은 처음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왜 성당을 증축하며 제단은 건들지 않았을까요? 성당의 중심은 언제나 성령의 은혜가 내리는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제단이 깨끗하고 거룩한 이유는 ‘제물’이 바쳐지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당신 제단 위에 당신 자신을 바치셨기에
하느님께서 그 위에 내리셨습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 위에서 소를 잡고 제단에 봉헌할 때
그 위로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불은 닿는 것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696)
솔로몬도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할 때 그 제단 위로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불도 ‘성령’을 상징합니다.
거룩한 제단에는 항상 제물이 봉헌되어야 하고 그러면 그 위에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죄의 용서가 이뤄지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따라서 “신약의 제대는 주님의 십자가이며”, “제대가 (그리스도의) 무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1182)
바오로 대성당 제단 밑에는 바오로 성인의 유해가 관 속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 대성전 제단 밑에는
베드로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제단이 거룩한 이유는 ‘봉헌’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의 제단에서도 자기 뜻을 주님의 뜻에 봉헌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편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봉헌하지 않는 사제는 없고 제물이 없는 제단도 없습니다.
기도는 각자 영혼 안에 있는 자신의 제단 위에 자기 뜻을 봉헌하여 성령께서 내리기를 청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각자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봉헌하지 못함으로써 자신들 안에 하느님의 복을 받는 제단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만들어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도 자기 이익만 챙긴다면 장사꾼이 가득한 도둑의 소굴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성전의 제단에서는 끊임없이 우리 욕심들이 봉헌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내리는 깨끗한 구원의 제단이 마련됩니다.
그러면 그 위로 분명 그 제물을 태우기 위해 내려오시는 성령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전례가 드려지는 성전은 바로 기도가 드려지는 우리 영혼의 상징입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3월 14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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