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송현신부)
수십 년 동안 왕에게 충성을 바친 영국의 한 신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충직한 신하를 왕은 슬픈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왕은 그를 그냥 떠나 보내기가 안타까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신하여!
자네가 일평생 충성스럽게 나를 받들었으니 나도 뭔가 보답하고 싶네.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게
죽어가던 신하가 용기를 내어 애원했습니다.
왕이시여! 저를 하루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왕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나. 자네가 요청한 것은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어.
오직 하느님만이 불사불멸의 생명을 주실 수 있다네.
이 말을 들은 신하는 세상을 떠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면 속세의 왕을 모시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았어야 했어.
오히려 하느님을 모시고 따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 건데.
내가 무척이나 어리석었구나.
우리는 모두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보람 없이 오래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괴태의 말처럼 범인(凡人)은 시간을 소비하는데 마음을 쓰지만
성인 군자는 시간을 이용하는 데 정신을 기울입니다.
비록 짧게 살더라도 보람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승 예수님은 참으로 값지고 보람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사랑의 삶을 살다가 죽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황금빛 부활의 새벽을 가슴 벅차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과 죽음에는 언제나 고통이 뒤따르기에 우리는 무척이나 망설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데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희생해보아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입니다.
사랑의 삶으로 죽는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보람과 기쁨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결실을 맺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어느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죽음을 앞둔 그 마지막 순간에 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안겨줄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하느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와 보람만을 찾는 사람.
그래서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
그는 이 세상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얻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세상에서는 반드시 폐배의 쓴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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