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칠십에 생겨난 마음 하나

수성구 2020. 6. 20. 04:46

칠십에 생겨난 마음 하나

 

 

 

마음먹기

칠십에 생겨난 마음 하나

(정명지)

 

 

내 나이 칠십이 되었다.

고희라고 축하받는 나이다.

예전에 고희가 된 사람들에게 축하한다고 하면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반기지 않는 것을 보았다.

칠십이 무슨 흠이나 되는 듯 의기소침한 기색까지 보였다.

 

 

나는 속으로 칠십이 어떻다고....

나이 드는 것이 무슨 부끄럼인가? 했었다.

그랬던 내가 생일 엄마 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해지고 기운이 빠졌다.

칠십 이후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도 다리도. 손도 말도 날로 감각이 둔해질것이다.

열정도 식어 그 전 같으면 했을 일을 조금씩 접기 시작했고.

방안 가득 애착 갖던 물건들도 서서히 정리 품목으로

내 삶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남아 있는 날들이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좋은 일들 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나를 허둥대게 했고 어둡게 했다.

또 이제까지의 삶이 부질없다는 허무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제까지 나는 나이 먹는 일이 좋았다.

심지어 나이 먹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많은 짐을 지고 어려운 삶의 고비를 넘기던 삼십 대에는

사십이 되기를 기다렸다.

공자가 말한 불혹..이라는 말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그 나이가 되면 고뇌에서 해방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십이 되어서도 불혹은커녕 더 치열한

삶의 고비를 넘겨야 했지만

그래도 사십이 되어서 나는 좋았다.

 

 

오십. 감히 지천명..은 아니지만 많이 자유롭고

너그러워진 삶이 좋았다.

그리고 삶의 한바퀴를 돌아 다다른 육십환갑은

내게 축일로 느껴졌다.

 

 

새로 태어난 듯 삶의 껍질을 한 꺼풀 벗어내면

나는 내 삶을 계획했다.

수십 년 극기와 절제. 학업과 직장일. 가사 등에 밀려

못한 일들을 시작했다.

육십 이후에는 나 자신을 위한.

자유롭고 즐겁고 가벼운 삶을 살고자 했다.

자유의 바람이 나를 휘감았다.

 

 

 

여행. 좋아하는 일. 활발한 모임. 다소간의 물질적 호사를 누리며

내 삶의 무게를 덜어냈다.

그동안 애썼다며 내 자신에게 스스로 상을 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십 년. 칠십 이 다가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예전과 달리 힘이 없어지며

다소 처량하기까지 하다.

축하 인사가 싫다.

이제 까지 나이는 많아질수록 두터운 이불처럼 따뜻하다 생각했는데

칠십이 되며 그 이불은 얇은 홑이불로 느껴졌다.

오래 덮어 얇아진 이불처럼. 그렇게

칠십 앓이를 하다 어느 날 마음 하나가

내게 새싹처럼 올라와 가슴을 따뜻하게. 환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주는 일이다.

가짐이나 누림이나 움켜쥠이 아닌..

 

 

 

그 마음이 생겨나자 나를 주저앉혔던 무력감과 열패감

절망감이 서서히 밀려나며 나를 일으켜 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내 마음과 몸에는 활기가 솟아올랐다.

두렵고 춥던 나의 삶이 데워졌다.

 

 

그날 나는 해마다 가을이면 가보는 성균관 대성전 앞

700년 된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오랜 세월과 풍상이 오히려 그 나무를 미덥고 아름답게 만든 것은

온 힘을 다해 살아내며 모든 것을 세상에 내어주었기 때분일 것이다.

 

 

나는 그 나무에서 새로 뻗은 가지 하나를 발견했다.

세상을 새로 밝히는 가느다란 가지.

700년 살아낸 나무가 키워낸 새 가지다.

 

 

나도 칠십 이후에는 이제껏 나의 삶을 양분 삼아

새로 뻗은 가지를 키워가리라.

삶이 허무와 나태로 허물어질 때

이 나무 앞에 서리라..

 

 

이런 나에게 오늘 또 하나의 격려 어린 답이 왔따.

이태석 신부의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2-슈크란 바바..

10년 전 보았던 1편은 영화가 끝날때 울었다.

그러나 2편은 시작부터 눈물 고인 채 보았다.

 

 

그는 성직자였고. 음악가였고 의사였고 교육자였고.건축가였다.

이 뛰어난 능력은 사랑의 힘이 내놓은 능력이다.

친자식이 없는 그였찌만 그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이

친자식처럼 울었다.

 

 

그가 세상에서 남기고 간 사랑의 양이리라.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그는 아주 이른 나이에 이 말을 마음에 새겨 실천하다가

48세의 짧은 생을 영원으로 이어놓았다.

언제 저세상에 가느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는 삶은 끝이 없다.

주는 삶은 시간을 재지 않는다.

나도 조금은 그를 따르리라.

아주 작은 일부터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보상 없는 일에는 인색하던 내게 칠십이 된 어느 날

햇살처럼 스며온 마음.

사랑은 내 나이 칠십이 내게 준 답이다.

앞으로도 자주 이기적인 삶의 유혹에 눌려 안일과 욕심에 헤메겠지만.

춥고 무거운 나이 칠십의 무게를 솜털처럼 따뜻하고

가볍게 만들어준 그 마음의 심지를 세우며 살아가리라.

 

 

오늘 영화는 나와 뜻을 같이한 벗과 함께였다.

나는 이태석 신부의 삶을 보며

여러 번 친구의 손을 잡고 싶었다.

우리 작은 일이라도 꼭 하자고.

 

 

남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는 삶.

그것은 칠십의 연륜이 가져다준 삶의 숨은 가르침이 아닐까.

나이 칠십은 이렇게 새로운 길 하나를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