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행복 가득한곳

봄은 왔어도 내 마음은 봄 아닌 것을|◈─……

수성구 2020. 2. 12. 04:26

봄은 왔어도 내 마음은 봄 아닌 것을|◈─……행복가득한곳

       

봄은 왔어도 내 마음은 봄 아닌 것을...



의례 봄이면 사람들에게 늘 회자되는 유명한 두 구절이 있다. 그 첫째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요 두 번째가 '4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말이다...

헌데 이 두 단어의 원조를 보면 모두 훗날에 내려오면서 본래의 뜻에서 약간 비껴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춘래불사춘'의 원래의 의미는 봄이 왔지만 만물이 변한 것이 하나 없어 전혀 봄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여긴 봄이라는데 전혀 봄같지 않네?' 하는 의미이다. 헌데 이것이 광역화되어 봄이 왔으되 내 마음엔 봄이 오지 아니하고 있다는 말로 요즘은 쓰이고 있다.

헌데 이 시는 아래 소개하려니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인데 정작 중국에서는 별로 세간에 회자되지 않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춘래불사춘'이 우리가 겪은 시대상황들 그리고 국민정서와 들어 맞았슴인지 의례히 봄이면 들리는 말이 되어 버렸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도 사실은 비슷하다.. 영국시인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장편 서사시의 제 1장 '死者의 매장'의 첫 구절이다.. 전쟁후 인간의 도덕, 존엄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잠들어버린 망각의 사자의 무덤을 봄이 되어 그것을 일깨우고 그 황무지를 다시 바라 봐야 하는 심경을 읊은 것인데.. 흔히 우리들 세간에는 '봄의 연심의 상념 '처럼 사용 되고 있다..

재미없는 서론이 참으로 길었다 어쨋거나 지금 세인들에게 사용되면 그 표현이 현재는 맞는 표현일 것이니.. 무엇이 그리 중요할 것인가?

 昭君怨(소군원)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왕소군의 원망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아닐래라
 자연스레 허리띠가 느슨해 지는 것은
 일부러 날씬해지려 살 뺀 것이 아닌데..


  / 東方? (동방규)

왕소군 이야기는 썼거니와 한 원제의 궁녀로 있다가 내시장 모연수의 간계로 초상화가 잘못 그려지는 바람에 흉노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가게 되었지만 먼 이역만리에서도늘 한궁을 그리워 하였기로 높이 기림을 받게 되면서 중국 4대 미녀에 당당히 끼어 날아가는 기러기가 그 미모에 눈이 돌아 떨어지게 했다는 '낙안미인' 왕소군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 소군에 대해서 썼는지 아무튼 그녀의 인기는 지성인들 사이에서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당나라 때 '무측천'의 총애를 받았던 자사 동방규도 다섯수의 '소군원'을 남겼는데 그 첫 수에 바로 그 유명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이다..

그녀의 묘는 내몽고자치구 수도 '호화호특'내에 관광지로 무지하게 잘 꾸며져 있는데 옛 시인들의 글에 그곳은 푸른풀이 나지 않는데 그녀의 묘만 한나라를 사모한 탓인지 중원땅 같은 푸른풀이 난다고 하여 청총(푸른무덤)이라고 했던가 어쨌던가? 아무튼 그래서 호화호특이라는 그곳 시의 이름 의미도 '푸른마을'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춘래불사춘'의 원조를 찾아봤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우리네 식의 '봄이 왔는데 봄을 느끼지 못하는' 진정한 의미의 '춘래불사춘'을 찾아 보자

春 望 (춘망)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時花賤淚(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봉화련삼월)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白頭擾更短(백두요갱단)
渾欲不勝簪(혼욕부승잠)
봄 시름
나라가 부서졌어도 산과 강은 변함없어
성 안의 풀과 나무엔 봄 색이 깊어지는데 
시절을 애상히 여기니 꽃조차  눈물을 흘리고
먼 이별을 한되어 새들조차 마음 놀라네
전쟁 봉화가 석 달 째 계속 올라가나니
가족들의 편지는  천만금보다 더 귀하다
흰머리를 긁으니 자꾸 짧아져서
이제는 비녀조차 꼽지를 못하누나..
 
 / 杜 甫(두 보)

교과서에도 실렸으리만치 너무 유명하고 유명해서 이 시는 중국 학생들을 위한 시 공부책에서도 본 기억이난다 그만큼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명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성이 깨져 부서나가고 온통 전화의 불기둥이 남아있는데 봄이랍시고 도성에는 봄 꽃과 풀이 파릇 거리고 있었다..

가족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데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소리는 어디에 큰 싸움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둥 하는 흉흉한 소리뿐인데 서신조차 오갈 수 없는 기막힌 시절이다..

그러니 봄은 왔으되 시인 두보의 가슴에 봄은 오지 못하였기로 저 꽃을 보니 꽃조차도 눈물짓는 것 같고 저 날아가는 새를 보니 새도 죽음의 이별에 놀라 가슴떨며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완벽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客至 (객지)     
舍南舍北皆春水(사남사북개춘수)  
但見群鷗日日來(단견군구일일래) 
花徑不曾緣客掃(화경부증연객소) 
蓬門今始爲君開(봉문금시위군개)  
盤餐市遠無兼味(반손시원무겸미) 
樽酒家貧只舊?  (준주가빈지구배) 
肯與隣翁相對飮(긍여인옹상대음)  
隔籬呼取盡餘杯(격리호취진여배) 
손님이 오셔서...
집의 남과 북으로는 온통 봄 물결로 가득 찼어도
보이는 건 날마다 떼 지어 날아오는 갈매기들뿐이다. 
떨어진 꽃으로 덮인 길은 쓸어 본 일도 없는데, 
오늘은 그대를 위해 쓸고 사립문도 활짝 열어놨소
저자거리까지 워낙 멀다보니 상차림이 조촐하고, 
가난한 살림살이 술도 먹다 남은 술뿐이지만
옆집 노인과도 더불어 마셔도 괜찮으시다니
/ 杜 甫(두 보)

늘 가족을 중히 여기고 함께 붙어 지내려고 노력했던 시인이 두보이다. 그런 두보에게 평생 고달픈 떠돌이 생활 가운데 그나마 비교적 단란하고 평온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바로 당시 성도의 시장을 맡고 있었던 지인 엄무(嚴武)의 후원으로 성도 완화계 부근에 초당을 짓고 전원 은거 생활을 하던 때이다.




▲ 완화계 공원 입구







▲ 두보의 사당인 완화 초당



위의 시는 그때 지은 시로 어느 봄날 그곳 지방 현령인 최명부가 두보를 찾아 와서 손님맞이 정경을 그린 시인데 그의 소박한 성품과 기질이 참으로 멋지게 드러나고 있다...

길손들의 발길도 닿지 않는 곳이라 그냥 자연처럼 살고 있는데 자신을 찾아온다니 오는 길목도 쓸고 사립문도 활짝 열고 맞으며 비록 어려운 살림이라 새로 담구어 묻어둔 새 술 단지도 없고 안주거리도 변변치 않아도 옆집 노인네도 사람 좋고 술 좋아 하니 우리 함께 불러 마십시다 ...하는 말이다.

그래, 아무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어도 봄은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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