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어디 있어요?
오늘 예수님께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만민에게 하늘나라를 선포하시는데,
이스라엘은 회개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회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회개할 수 있을까요?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 집안에는 남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는 사촌 중 한 명이 전화를 했습니다.
“누님! 보속을 안했는데, 영성체해도 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보속을 왜 안 해?”
“신부님께서 보속을 안주시고 ‘나가!’라고 해서 보속을 못 들었어요.”
“왜 신부님께서 보속을 안 주시고 ‘나가!’ 하셨을까?” “나는 죄가 별로 없는데,
마누라가 판공성사 보라고 독촉을 해서 고해소에 들어왔다고 했어요.”
이런 신자를 만나면, 고해소의 신부님은 얼마나 답답하실까….
“아이고 저런, 죄가 없구나! 넌 니 댁 마음을 상하게 한적 없어?
아버지 뵈러 간다고 하고 못 간적도 없어? 엉뚱하게 화낸 적은 없어?
날마다 하느님을 의탁하며 감사기도 드리니?” 라며 이것저것 물어보니
“누님! 그런 소홀함을 죄라고 하는 거야? 일상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유교 집안에서 나 중심적인 도덕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하느님의 넓은
마음과 자비를 배우고 실천하는 기쁨을 누리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죄를 의식하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은 축복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아담의 죄를
“오, 복된 죄(Felix Culpa)!”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에 “오, 복된 죄!”라고 부활전야에 감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면 하늘나라를 얻는다고 초대하십니다.
온통 주위가 악이요 어두움인데도, 이러한 악에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는 모습은 하늘나라 체험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신선하고 내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천인 것에 감사합니다.
나의 죄를 대면하면 할수록 놀라운 하늘나라의 신비에 조금씩 다가가는
내적 기쁨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까지 나를 성장시키는 나선형의 지름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 도전이고
감격입니다. 우리는 세례로 작은 우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냇가로,
냇가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대양으로, 대양에서 우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하느님 사랑에 감격하며 하루를 사는, 일상의 하늘나라
경험이 감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면,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이 되면 하늘나라를
맞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회개하는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찾게 하신 예수님의 회개의 초대에 감사합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도원
홍성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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