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입고 기도해도 되니?
주님 세례 축일로 우리는 크리스천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지구로 오신
엄청난 사실을 경축하는 성탄 시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가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우리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증언을 합니다.
저는 모든 크리스천과 같이,
수녀의 역할도 세례자 요한처럼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기천리 베네딕도 교육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보성인은 12세기 신비주의 베네딕도 수녀인 힐데가르드입니다.
성녀는 녹색에서 생명을 보고 어려서부터 비전을 보며 우주의 원리를
엿보았습니다. 비전을 그림으로 제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신비에
눈뜨게 하는 모습은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을 능가(?)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순교자만이 증인이 아니라, 모든 성인들은 증인들입니다.
저희 베네딕도 교육원은 수원 가톨릭대학교가 있는 건달 산 뒤편 기천 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침 해님이 건달 산으로 올라올 때는
‘주님께서 성체를 들어 올리신다’(이수철 신부 詩)라는 시가 저절로 읊어집니다.
저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처럼 황량한 중국의 대지 위에서 자신을
봉헌하며 미사를 드릴 엄두는 내지 못해도 사제의 아름다운 일상을
부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건달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하느님이 들어
올리시는 성체라는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건달 산이 제대가 되어 다가오면서
마치 하느님께서 미사를 드리시는 것 같습니다.
기천 골의 자연은 하느님을 만나기에 너무 좋습니다.
기천 골에 살면서 ‘고향’에 온 것 같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집에 휴가를 가면 어머니 는 질문이 많으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버님이라고 하지 않고, 왜 아버지라고 하니?”
“십자가를 내려놓거라! 한 번 죽은 것도 안쓰러운데, 왜 매달아 놓고 보니?”
“예수님이 애미 앞에 갔으니, 불효다.”
“성모님이 불쌍하다.”라고 하십니다.
한번은 “잠옷을 입고 하느님께 기도해도 되니?”라고 물으시며 잠옷을 입고
기도하려니 죄스럽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셨던 분이십니다. 제가 “예수님하고 팔베개하고 주무셔도 돼요!”라고
했더니, “아이고 숭하다.” 하시면서 돌아앉으십니다.
어머니의 질문은 성경을 건성으로 읽었던 저에게 세례자 요한의 증언처럼
가슴을 두드립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그렇게 일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잠옷을 입고 기도해도 되고, 예수님과 팔베개해도 됩니다. 모든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보게 하는 세례자 요한의 계시가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도원
홍성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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