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넷째 왕’이 몰려옵니다

수성구 2014. 1. 8. 16:11

 

    ‘넷째 왕’이 몰려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무작정 길을 떠난 축일입니다. 
    외로운 목동 때문에 베들레헴이 흥분에 싸였는데, 동방 박사들의 출현으로 
    떠들썩해졌습니다. <넷째 왕의 전설>에서는 길을 떠난 사람들이 삼왕만이 아니라는 
    깊은 인상을 줍니다. 오늘도 외로움 중에 ‘별’을 보고 구세주를 찾는 이들이 
    곳곳에서 길을 떠납니다.
    저는 피정의 집에서 소임을 하다가 수유리에 있는 ‘베드로 무료 식당’에 파견되어 
    ‘길 떠난 많은 왕’들을 만났습니다. 인계를 하는 수녀님께서 식당 재정이 어려우니, 
    새해부터 밥값을 500원씩 받자고 했습니다. 깊게 생각해 준 수녀님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100명이 넘게 오던 분들이 40명으로 줄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내가 500원에 매달려 있다는 자각이 밀려왔습니다. 성주간에 
    다시 무료로 식사를 드렸습니다. 이제는 100명이 넘어, 150명이 오십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숙자만 오시면 좋으련만, 혼자 먹기 외롭다고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분들이 별을 따라 사랑이 있는 곳에 오시는 것 같습니다.
    품위 있게 식사를 하시도록 꽃도 꽂고, 식탁보도 깔았습니다.
    “비가 오는데, 오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점심을 주고 고맙다니, 
    우리가 감사해야지.” 하시면서 “잔치야, 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이러한 잔치로 우리를 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젊은 남자들이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인사를 하면 
    “내가 무슨 너의 어머니야? 수녀님이지.” 하고 고쳐 주었습니다. 
    또 점심을 먹고는 “성모님! 감사합니다.”하고 달려 나갑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나니, 저를 “어머니!”하고 부르면 “아이고 반가워라. 
    점심 잘 챙겨 먹어서 고마워.”하고 등을 두드려 주면서, 밝은 미소를 띄웁니다. 
    저는 이분들이 <넷째 왕의 전설>에 나오는 ‘넷째 왕’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목이 부러진 천사인형을 가져오는가 하면, 또 머릿장도 가져옵니다. 
    그래서 천사인형은 식당에, 머릿장은 제 사무실 앞에 놓고 꽃도 꽂고 
    화분도 놓았더니 “어머니, 꼭 은혜 갚을게요!”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그렇게 원하셨던 당신의 ‘식탁 선교(table mission)’를 
    ‘베드로 무료 식당’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은혜였습니다.
    20개월이 되었을 때, 갑자기 다른 곳으로 소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소임이 바뀌어 떠난다는 말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보름을 미루다가 결국 떠나는 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결같이 그립다는 말,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편한데 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정말 이분들은 마음 깊은 ‘넷째 왕국의 사람들’입니다. 
    삼왕이 오신 이날은 잔칫날이고, 삼왕을 맞는 베들레헴은 잔치이고, 
    사랑을 나누는 베드로 식당도 잔치입니다. 가난할수록 잔치가 맛이 있습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도원
    홍성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