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메시지
저는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술을 거의 못 먹었습니다.
맥주 서너 모금만 마셔도 온몸이 홍당무가 되고 심장이 뛰곤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 술자리를 피하는 것은
거의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마시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주량이 약한 사람이
급격히 주량을 늘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지금은 술을 너무 잘 먹어 걱정인데,
심지어는 좋아서 찾아 마시는 정도까지 되어버렸습니다.
나이가 들고 성인병도 생기니 술을 줄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는데도
갖은 핑계를 대면서 술 마시는 기회를 만들곤 했습니다.
몇 해 전 월드컵 경기가 한창 열릴 때의 일입니다.
일본에서 오신 아버님 같은 분을 만나 뵙기 위해 부산에 갔는데,
마침 그 날이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손님을 모시고 지하에 있는 바로 내려가 그곳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사업상 손님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기분 좋게 취해서 우리 팀 경기를 응원했습니다.
그렇게 응원을 하던 중에 화장실에 가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뒤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이! 거 우리 옆 테이블 글마 봤나?”
“누구?”
“자세히 보이께네, 그 두산 회장 박용만인가 그 친구인갑다.”
“어! 그래? 확실해?”
“맞다. 틀림없다. 우와 근데 글마 첨부터 끝까지 폭탄주로만 마시삐네.
한 술하는갑다. 술 억수로 잘 마시삐네.”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뭐 글카다 고마 하느님이 얼른 데려가시겠지.”
더 듣고 있기가 민망해서 돌아서며 “제가 박용만입니다. 고마운 말씀
잘 들었습니다. 술 좀 줄여야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와 생각하니,
정말 이러다 큰일이 나지 싶었습니다. “그러다 하느님이 얼른 데려 가시겠지.”
라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강제로 마시는 술을 줄였고 지금은 술을 거의 안 마시는
정도입니다. 회사에서도 음주 민주주의를 회식자리에서의 기본 철학으로
정립하여 싫은 술 억지로 권하지 않고 과음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도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대부분 건강으로 직접 혼이 나고 정신을 차리는데, 저에게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하는 두 분의 입을 빌려 하느님께서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감사한 일이 늘 이어지니 참으로 저를 예뻐하시나보다 생각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성당 문을 들어섭니다.
박용만 실바노 / (주) 두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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