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28. 화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2테살2,1-3ㄱ.14-17 마태23,23-26
오늘은 어제 성녀 모니카 기념미사에 이어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이렇게 모자분이 나란히 기념미사가 있기론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성인은 서방 4대교부들(예로니모,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대 그레고리오 교황)중 한 분으로 가톨릭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로 ‘은총의 박사Doctor Gratiae’로 일컬어 지며, 성 바오로에 이어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으로 개신교에서도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참으로 좋아하는 성인입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영적 삶의 여정을 사셨던 성인으로, 전해오는 저작으로는 113종의 책과 200여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등이 있으며, 대표적 저서로는 어제 소개한 ‘고백록’과 ‘신국론’이 꼽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의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입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성인의 회심과정입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보하다가,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하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서를 들어 펼쳐 읽어 본 구절이 바로 다음 내용입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속에 살지 맙시다.”(로마13,13).
성인의 회심에 결정적 영향을 준 성구입니다. 고백혹에서 인용된 아침성무일도 즈카르야 후렴과 저녁기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 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요.
"주여, 당신을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하시나이다. 당신 안에 쉬게 될 때까지는 우리 마음이 평온치 못하리이다."
"옛것이나 항상 새로운 주님의 아름다움이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주님은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게 하셨나이다."
마침내 영적방황은 끝나고 완전히 하느님 중심의 삶에 돌입하게 된 성인입니다. 마침 오늘 강론 주제가 “하느님 중심의 삶-영적 근력, 안정, 평화-”입니다.
어제는 영혼의 근육, 영적 근력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병으로 기동하지 못하고 오래 병석에 누워있다 보면 육신의 근육이 없어져 참으로 곤경에 처한다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연골이 다 닳아도 뛸 수 있는 것은 근육의 힘, 근력때문이라 합니다. 하여 근육이 없어진 이들에게 근육의 힘, 근력을 키우고자 장기간의 물리치료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연상된 영혼의 근육의 힘인, 영적 근력입니다. 영적탄력과 흡사한 영적근력입니다. 영혼을 방치해 영혼 근육의 힘이 약화되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육신 근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영혼 근력 키우기를 소홀히 하는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여 영적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평생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라는 영적훈련입니다.
아니 우리 일상의 모든 수행이 영적근력의 유지는 물론 증진기키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온갖 정신질환도 결국은 영적근력의 약화로 인해 기인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의 영적 힘이 약화될 때 영적탄력도, 영적근력도 약화되면서 삶의 목표와 방향, 삶의 중심과 의미를 잃게 되어 결국 무기력, 무의욕, 무감각이 뒤따르고 마침내 부정적 허무주의, 비관주의의 포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 알 수 없는 것이 어제에 이은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누구보다 하느님 중심의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이들이 예수님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오늘 복음중 두 번 거푸나옵니다. 첫째는 십일조를 꼬박꼬박 바치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소홀히 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위선적 눈먼 어리석은 행태이며, 둘째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속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위선적 어리석은 행태입니다.
바로 외적으로는 하느님 중심의 삶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자기중심적 삶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하느님 중심의 삶에 끊임없는 회개로 올바른 분별의 지혜에 진실과 겸손을 지닌 사람이라면 도저히 본말전도, 표리부동의 삶을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5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중학교 3년동안 담임선생님이자 영어선생님(최종훈)이었던 분의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겉보다는 속이 깨끗해야 한다. 겉옷보다는 속옷이, 속옷보다는 몸이, 몸보다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이 충실할 때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가난한 마음, 깨끗한 마음이 되어 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대한 답도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있음을 봅니다.
“누가 주님의 날이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바로 하느님의 중심의 확고한 삶일 때 내적 안정과 평화에 분별의 지혜로, 마음 불안하여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며 유혹에 빠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음 내용 역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에게는 필히 명심해야할 말씀입니다.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거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우리 가톨릭교회는 참 자랑스러운 말씀의 종교, 전통의 종교입니다. 그러니 늘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에 충실할 때 저절로 확고해지는 하느님 중심의 삶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바치는 매일의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도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가 우리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줍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우리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2테살2,16-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