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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법정

수성구 2018. 5. 6. 05:33

빌라도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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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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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법정



안토니아 요새(빌라도법정, 안토니아 성)

위 사진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제2성전시대 예루살렘 대성전 모형이다. 사각형 건물이 대성전이며 오른쪽 뒤쪽에 4개의 탑이 있는곳이 안토니아 요새이다.헤로데(기원전 37-4년 재위)는 기원전 37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한때 하스몬가의 요새가 있던 ‘바리스(성)’ 자리에 후원자 마르코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여 기원전 31년에 가장 전략적인 자리인 예루살렘 대성전(현 회교 대사원) 북서쪽 즉 성전 벽의 모퉁이에 요새를 세우고 ‘안토니우스’에게 헌정하였기 때문에 ‘안토니아 요새’라고 부른다.

약 50m 높이의 암석 위에 세운 이 요새는 자연적인 방어 능력이 없는 성전 북쪽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하였고, 헤로데 군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성전 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했다. 안토니아 요새는 내부 폭이 약 120×45m였고 스파르타식 군대 막사는 없었다. 군사용 부속건물 외에 호화스런 주거지와 목욕탕이 있었다.

요세푸스는 ‘그 장엄함이 마치 왕궁처럼 보였다’(유다 전쟁사 5.5.8)라고 보고한다. 이 성은 유다전쟁(66년)때 전소, 파괴 되었고, 70년 티투스 황제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이 안토니아 요새 자리에는 현재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바로 맞은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엑체호모 시온 수녀원 그리고 바로 그리스 정교회의 ‘예수님 감옥’ 수도원이 있다.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마태 27,27-28)”



안토니아 요새

사도 바오로가 성전 뜰에서 연설하다가 군중들에게 붙잡혀 죽게 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를 체포했던 로마군은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로마군 수비대장은 사도 바오로가 폭동을 일으켰다가 사천여명의 자객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이집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사도 21,27-40 참조)

천인대장이 바오로를 진지 안으로 끌고 가 채찍질을 하여 심문하려고 하자 바오로가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여 위기에서 모면한 곳이기도 하다.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풀어주고 유다인들이 왜 그를 죽이려는지 알아보려고 최고의회를 소집 하였고(사도 22,22-30 참조), 급기야 바오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자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카이사리아에 있는 펠릭스 총독에게 호송시켰다.(사도 23,12-35참조)



안토니아 요새(우),  아래쪽 중간지점에 있는것은 베짜타 연못



안토니아 요새



아치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왼쪽이 작은형제회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오른쪽 아치가 연결된 부분이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로 들어가는 문이다.



엘 오마리에 초등학교로 오르는 계단에서 찍은 사진.

가까운쪽에 보이는 쿠폴라는 '예수님 사형선고 성당'이고 안쪽 끝부분에 보이는 검정 쿠폴라는 '엑체호모' 수녀원의 대성당 쿠폴라.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빌라도법정), 철책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이 공식적인 십자가의 길을 할때 1처가 시작되는 곳.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빌라도법정)



사진에서 보이는 탑은 작은형제회 수도원에서 바라본 '엘 오마리에' 초등학교와 붙어 있는 이슬람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