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행복했노라 말하리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다보면 무엇인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 돈 많고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훨씬 관대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원하지 않아도 나이라는 것을 먹어야 한다.’ 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한편으로 참 공평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겪게 되는 삶의 형태가 바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잘살아야 한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도 있고, 죽었으되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38)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죽은 자는 바로 살아있으되 주님을
거부하고 깨어있지 못하며,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욕심과 욕망에만 사로 잡혀 사는 사람들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그분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루카20,38).
바로 그분의 현존을 인정하기에 그분을 대면하면서 늘 자신의 부족함을 하느님께
용서 청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뒤에 숨으면 이미 관계는 멀어집니다. 앞에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마지막 부르심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인류는 처음부터 죽음을 두려워해왔는지 모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무화(無化)된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시대, 누구에게도 죽음은
미지의 것이고, 신비의 영역이며, 불안의 근원이었습니다.
우리의 탄생이 우리의 원의와 실적과 무관했던 것처럼,
우리의 죽음도 우리의 원의와 실적과는 무관하게 찾아옵니다.
바로 이 죽음을 영접하신 분,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너희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신분,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그렇기에 위대하고 더욱 소중한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주신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 마지막 부르심이 찾아왔을 때
‘이 세상 행복 했노라’라고 말씀 드립시다.
수원교구
박경민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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