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알았으면 상간이 안 될 이치가 있느냐?
네 이 곳에 와서도 상간을 했지?”
“사모하면서도 사모한다는 말도 입 밖에 비친 일이 없사온데...
부당하외다 나으리.
소인이 주야로 잊지 못해 먼발치에서나마 만나보면서
살고 싶은 뜻은 있었사오나, 상간이라니요..
오늘밤 비로소 서로 만나기로 했고,
그동안 떠나 있던 정리를 말했을 뿐인데,
상간이란 당치 않습니다”
“소옥(小玉)아.
내가 네게 무엇을 부족하게 했기에 그런 행동을 했느냐”
“네 또한 저놈을 그리워했단 말이냐?”
“그리웠습니다”
“지금은 어떠냐? 지금도 저놈을 사랑한단 말이냐?”
“법으로는 나리를 쫓사오나....”
“법으로는 나를 따르나....”
“마음으로는 덕만이를 사모하옵니다 ”
“진정이냐?”
“나으리께 황송하옵니다”
“이 연놈을 광속에 가두어라.
형조(刑曹)에 알려 물고(物故;죄인을 죽이는 것)하라 하여라”
아침 진시(辰時) 두 남녀 죄수는
형리(刑吏)에 끌려 교형실(絞刑室;목을 매다는 방) 문 앞에 이르렀다.
형리 “너 덕만이 먼저 들어가거라! 시간이 없다”
덕만이를 바라보는 소옥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막 덕만이 형실(刑室)로 들어가려던 순간,
옥승(獄丞)이
“기다려라!”하는 호령과 함께 나타나,
형리들을 모두 물러 나게 한 다음,
“大君의 각별한 부탁으로 너희들의 행형(行刑)을 중지한다.
궁중풍기를 바로잡기 위해 너희를 처형코자 형조(刑曹)로 보내긴 했으나,
물고시키는 것이 불쌍하다는 고마운 말씀이시고,
너희는 즉시 한양 백리 밖으로 나가
다시는 도성에 들지 말라시는 분부시다”
그리고 전대(錢袋:돈이 든 자루)를 하나 건네면서
“이것은 대군(大君)께서 내리시는 노자돈이다.
지체하지 말고 떠나라.”
동작나루 건너 남쪽으로 통하는 대로.
봇짐 진 덕만이와 小玉이 서울을 향해 무릎 꿇고 절을 올린다.
“나으리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으리”
뒷날, 형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손에 죽은 안평대군의 기일(忌日)이 되면,
이 두 남녀와 그 식솔들은 남모르게 정성껏 제사를 드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