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에게☆...오순도순 나눔 °♡。
“수호천사”에게 (회상수필) 내일은 외갓집 가는 날! 설렘이 있는 날이면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새벽녘에서야 잠이 퍼붓는데, 눈이 뜨이지 않는걸 보니 밤 새 그랬었나보다. 일곱 살짜리! 아직 어렸었다. 아버진 양복에 검정색 구두로 멋을 내셨는데, 넥타이를 매지 않으심은 한 해 한두 번 입는 양복이 어색하셨고 시골에서 시골 가는데 뭐! 더 이상 시골티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셨음일 것이다. 아버지와 난 종일 타다 걷다 하여 해질녘에 공항근처 외갓집에 도착 하니 아버지 구두가 먼지에 회색빛으로 변했고 난 영락없이 눈만 큰 촌 아이 그대로였다. 비행장 근처, 처음 보는 집채만 한 신기한 비행기를 목이 아프도록 처다 봤고, 철길에서 구멍 뚫린 철판 위를 디디고 까불거리다가 결국 구멍에 발이 끼어 발목을 접쳤다. 아버진 나를 등에 업고 외갓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신다. 장모님! 하시면서... 어스름 땅거미가 기어갈 때, 가을걷이 하시느라 소죽솥에 늦게 불을 지피셨는지 빈 콩깍지 터지는 소리가 재미있었고 그 고소한 냄새가 허기를 불러왔다. 흙 바른 담장 위 단지 굴뚝에선 머릴 푼 듯 흩날리는 하얀 연기가 외할머니 머리카락을 닮았었다. 다음날 아버지 등에 업혔다 걷다 하며 외할아버지 산소를 향했는데 늙은 개 누렁이도 함께했고 붉은 병풍으로 둘려진 “숲 속 오솔길”을 지나 평평한 잡목 우거진 등성이를 지날 때 길가에 빨간 이름 모를 열매를 따 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까치밥과 덜꿩나무” 열매였고 그 단맛을 떠올리자 이내 침이 고인다. 우린 “`산토끼`도 보았고 `범나비`도 보았고 `버섯`도 따고 `관솔`도 `칡넝쿨`로 묶어왔다.” 해거름, 아버지는 관솔로 불을 지피시니 그날은 연기가 까만 내 터벅머리 색갈이였다. 난 절뚝거리며 아버지 몰래 누렁이와 마을구경을 나갔는데, 낮은 동네였는지 유별나게 물이 많았다. 실개천 지나 봇도랑을 마실 갈 때 쯤, 내가 얼마나 허약했으면 회오리바람에 밀려서 그만 봇도랑에 풍덩! 빠져버렸다. 엎어져 떠내려가기를 몇 분? 아니 몇 십분! 누렁이가 길길이 뛰면서 요란하게 짖어대니 빨래터 아줌마들이 주위를 살핀 덕에 나를 발견하시고 건져 올려 거꾸로 들고 등짝을 두드리니 물을 토하며, 와앙! 하고 깨어났다는 예기를 외할머니께서 해주셨다. 누렁이가 수호천사였을까? ............ 초등학교 3학년쯤? 한여름, 유달리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부스럼에다 긁힌 곳이 아물 겨를이 없었다. 그날도 어머닌 개똥 쑥을 찧어 두툼하게 허벅지에 바르고 천으로 묶어 주셨는데, 한 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내가 쑥물 묻은 아버지 사각 팬티 차림에 매미채를 들고 가다가 동네 또래 여학생을 만난다. 그 몰골에 전혀 부끄러움을 몰랐음은 혹시, 또래에 비해 내가 좀 뒤처진 아이는 아니었을까? 언덕배기 늙은 포구나무 위 시원한 나뭇가지에 붙어 종일 매미처럼 노닐다 해질녘에 결국 쿵! 하고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경사진 빈 밭 구석에 곤두박질 쳤다. 밭주인 아주머니께서 저녁준비 하시다 “뭔 소리야?” 하며 뛰쳐나와 나를 발견하시곤 집까지 업어주셨단다. 아주머니가 수호천사였을까? 깨어보니 아버진 나를 마루에 누이시고 빨간 고약을 머리에 발라주셨고 부채로 땀을 식히시며 파리를 쫓고 계셨다. 다음날, 읍내 병원을 다녀와도 온몸이 쑤셨지만 아이들은 피가 끓어 그몸에 또 다른 놀이 질을 위해 매뚜기잡이 채비하는라 눈을 반짝였다. 아련한 추억이지만 내가 살아내고 있음을 느끼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추억이지싶고 그야말로 “수호천사”가 있긴 있나보다. 항상 “나를 지켜준 나의 수호천사여 고맙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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