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백령도의 고통받는 사람들, 메리놀회 (태의선 로마노신부님) 영문편지번역☆...주 님 의 향 기 °♡。
People I Love : N0 13
THE SUFFERING PEOPLE OF P.Y. DO (Incident of 1973) That was a hard day on P. Y. Do. North Korean naval ships had blockaded the island of Paeng Yang Do for over a month, several contact by sea between us and the South Korean mainland. the people were bored, and I was bored. That evening three Marines eased their boredom by visiting me, drinking my rice wine, and teaching me to play poker. They convinced me of what I already know, that I have absolutely no talent for playing cards. Late that night the rumbling of our electric generator woke me, a horrible sound for what it meant, an emergency at the hospital. Someday was suffering. To save fuel and money, for we already were deep in debt, I’d restricted use of the generator except from 8 to 9:30 at night and for emergency use of the hospital. I prayed this was an emergency we could cope with. The surgeon had left our hospital the very day I took over the Mission and I’d still not found another willing to come to this little island in the Yellow Sea. Our medical staff was an internist, lent to us by St. Mary’s Hospital in Seoul; the Korean Marine Corps dentist. No surgeon. The rumbling of the generator continued on through the night. In the morning the Maryknoll Sister-Nurse told me. “We have a woman trying to give birth, but she needs a caesarian and our doctors are not competent to do it.” She looked at me as if I were to blame for not having a surgeon. The rumbling of the generator continued through the day as the woman in the delivery room labored in agony. Late that afternoon I was called to the hospital. A small fishing boat had arrived from our neighbor island, Tai Chong Do. It had been five hours at sea, dodging communist patrol boats in the fog, bringing to our hospital a young man whose legs were severed in a quarrying accident. A young woman, his wife, ran up to me. “O Father! Thank the Good Lord! We got him here in the time. I was so afraid he’d die before we got him here. But now you can save him!” I had to tell her we had no surgeon. Our young doctors did their best, but her husband died. As the fishermen carried his body back to their boat, one of them sidled up to me. “Father, you remember young Oscar, the boy you had live at the Mission while the doctor regulated his medication?” Well, Oscar’s medication didn’t reach him in time this month because of the blockade. He fell down in one of his epileptic fits last week and drowned in a mud puddle. You don’t have to send his medication no more.” The electric generator rumbled on for two more days, accompanying the agony of the young woman in the delivery room. Then a lusty yell signaled the arrival of a healthy baby boy. Soon after the horrible rumbling stopped as his mother slipped into a peaceful sleep, a smile on her face. A month later the Korean Air Corps plane, which landed weekly on our sandy beach at low tide, brought us a surgeon from the hospital in Seoul with which we had affiliated. Things were looking up. 제목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순서 13번 ; 백령도의 고통 받는 사람들 (1973년에 있었던 일) 그날은 백령도에서 지독한 날이었습니다. 북한 군함들이 한 달이 넘도록 백령도 섬을 봉쇄하였고 저희와 남한의 본토사이의 바다를 가르는 삼엄한 접촉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해병대들은 그 섬을 수호했는데, 짜증이 많이 나 있었고 사람들도 싫증이 났고 저도 싫증이 났습니다. 그날 저녁에 세 해병대원이 저를 방문하여 그들이 싫증나는 것을 풀었습니다. 저의 막걸리를 마시고 저에게 포커놀이 하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제가 카드놀이하는 데에는 전혀 재주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늦게 전기 발진기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저를 깨웠습니다. 공포에 질려 있는 듯한 것을 느끼게 하는 소리가 있었는데, 병원에 가야만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연료와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빚을 많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발진기사용을 밤8시부터 9시반 까지 병원에 가야 하는 긴급상황 때에만 쓰도록 제한해 왔습니다. 저는 이 긴급상황을 저희들이 해결해 낼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외과의사가 우리병원을 떠난 그날 저는 선교사명을 인수 받았는데 다시는 이 황해바다의 작은 섬에 와야 할 아무런 의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저희의 의료진은 서울의 성모병원에서 원조 되는 실습생이었습니다 ; 한국 해병대의사는 젊은 청년이었는데,전문의학실습기간도 거치지 않은 의료학교를 졸업한 초년병이었습니다 ; 젊은 해병대 치과의사 이었습니다. 외과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발진기가 덜컹거리는 소리는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아침에 메리놀 간호사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출산을 도와줄 여자 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녀는 제대로 소신을 갖고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저희 의사들은 그 일에 적합한 분이 없어요. 그녀는 제가 외과의사가 없다고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저를 바라 보았습니다. 전기 발진기가 덜컹거리는 소리는 그날 종일 계속되었고 분만실에서 그 젊은 부인은 고통스럽게 일을 했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저는 병원으로 불려 갔습니다. 작은 고기잡이배가 옆에 있는 섬, 태청도에서 와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5시간 걸렸는데, 안개 속에서 공산당순찰보트를 피해서 왔습니다. 한 청년을 병원으로 실어 왔는데, 그의 다리는 채석장낙석사건으로 끊어져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 그의 부인이, 제게 달려 왔습니다. 오! 신부님, 좋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시간 내에 남편을 여기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 사람을 여기로 데려오기 전에 죽게 될 까봐 너무나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신부님께서 그 사람을 구해 주실 수 있겠지요! 저는 그녀에게 외과의사가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젊은 의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어부들은 그의 시신을 그들의 배로 옮겨 실으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이 저에게 다가 왔습니다. 신부님, 소년 오스카를 기억하시죠, 그 소년은 의사가 약 처방을 조절해 주는 동안에 신부님께서 선교원에서 살게 하셨죠. 그런데, 오스카의 의료처방이 이번 달에 이 섬이 봉쇄되어 불가능했습니다. 지난 주에 그의 간질병증세 중에 하나가 발작을 일으켜 진흙구덩이에 빠져버렸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 의료처방중재를 해주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전기 발진기는 이틀동안 더 덜컹거렸습니다. 분만실에서 젊은 부인은 고통스럽게 일을 도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한 건강한 사내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우렁찬 외침소리가 들렸습니다. 곧 이어서, 그 아이의 엄마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서 깊은 잠이 들었고 공포의 덜컹거리는 소리는 멈추게 되었습니다. 한 달 이후에, 한국 비행기가 해변에 썰물이 된 백사장에 주별로 한번씩 저희가 제휴한 서울에 있는 병원의 외과의사를 싣고서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
|
'백합 > 주님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 (0) | 2017.01.11 |
---|---|
Papa Francesco 말씀 ♡ |☆... (0) | 2017.01.10 |
주님 세례축일|☆... (0) | 2017.01.09 |
하느님은 먼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0) | 2017.01.09 |
주님 공현 대 축일/세상의 빛 예수님/서울 대 교구 사무처 홍보실|☆... (0) | 2017.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