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행복을 얻기 위한 기다림|―········

수성구 2016. 11. 5. 03:52

행복을 얻기 위한 기다림|―········감동ノ눈물감동글

       





      행복을 얻기 위한 기다림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얼굴이 예쁘고 잘생긴 사람 마음이 너무나
      예쁜 사람 애교가 많은 사람 곰 같은 사람
      다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다른 느낌의 사람들이
      주는 행복도 모두 다르다.
      만나면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
      만나면 애처로와 보이는 사람
      만나면 시간이 빨리가는 느낌의 사람.

      그리고 만나면 마냥 행복한 사람
      시간이 가는게 너무나 안타깝게 만드는 사람
      이렇게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주는
      공통점은 기다림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 누굴 어떻게 만나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그 기다림이 절대 싫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는 모르지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음에
      그 기다림이 행복인 것이다.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일년이 될지 아니면
      영영 만나지 못할지라도
      기다림이 있기에 하루 하루가 행복인 것이다.

      기다림이 있는 동안은
      그 누구보다 행복인 것이다.

      평생을 기다리는 행복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할지도
      나에게 기다림이 있어 행복한 하루다 사랑이 있기에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인 것을

      오늘도 나는
      행복을 얻기 위해 기다림을 시작한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영상제작 : 동제






    어느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한 남자가 어느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지요.
    나이 스물 여섯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교회에서 간소한 출발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요.

    그때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자그마한 집에 그만 불이 났답니다.
    그 불로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고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셈 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이 만들어갈 수많은 추억들을 더 이상 아내가
    볼 수 없을 테니 그 후로 남편은 늘 아내의 곁에 있었죠.
    아내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답니다.
    남편은 곁에서 아내를 도와 주었지요.

    처음엔 아내가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었지만
    남편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답니다.
    늘 그것이 미안해서
    아내를 그 불 속에서 구해내지 못한 것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눈을 잃게 만든 것이…….

    많은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만큼 적응을 하였지요.
    그리고 그제서야 남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말없이 저녁 노을에
    한 풍경이 되어도 될 만큼 편안한 나이가 되어 갔답니다.

    세월은 두 사람에게 하나 둘씩 주름을 남겨 놓았지요.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에도 세월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들이 생겨나고 남편의 늘 따사롭던 손도
    부드럽긴 하지만 많은 주름이 생겨났지요.

    남편은 이제 아내의 머리에 난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곤 했답니다.
    이제 겨우 7월인데 당신 머리엔 하얀 눈이 내렸군.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제 왠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한번 보고싶어요.
    벌써 세상의 빛을 잃은 것이 수 십 년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신의 그 맑은 미소를 그게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 받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았죠.
    아무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는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세월은 이제 그들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먼저 남편이었지요.
    아내는 많이 슬퍼했답니다.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떠나기로 했지요.

    자신의 각막을 아내에게 남겨주는 것이랍니다.
    비록 자신의 눈도 이제는 너무나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이라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요.

    남편은 먼저 하늘로 돌아가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의 각막을 이식 받게 되었죠.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늘 곁에 있던 남편의 그림자조차 말이에요.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이제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도심의 전경을 보면서
    아내는 남편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답니다.

    당신에게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줄 수도 있었는데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에 당신에게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있었지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다오.
    늘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었지.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아직 젊을 때 나의 환한 미소에 대해서 말이오.
    하지만 그걸 아오?
    우리는 이미 늙어 버렸다는 것을 또한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오.

    당신은 눈을 잃어 버렸지만 그때 난 나의 얼굴을 잃었다오.
    이제는 미소조차 지울 수 없게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오.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나의 미소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늘 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마지막 선물로 당신이 환하게
    변해버린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기를 바라오.
    아내는 정말로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여보 난 알아요.

    당신의 얼굴이 화상에 흉칙하게 변해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화상으로 인해서 예전에 나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를 지어줄 수 없다는 것도

    곁에서 잠을 자는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당신도 내가 당신의 미소를 간직하기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당신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 이해 하니까 말이에요.
    참 ∼ 좋군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그리고 며칠 뒤 아내도 남편의 그 환하던 미소를 쫓아
    남편의 뒤를 따라 하늘로 떠났답니다.

    출처 : solomoon의 《좋은 글 매거진》 중에서









        라면(Noobles) 이야기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쌀 다음으로 제2의 식량이라고
        불리우는 라면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하는
        인스턴스 식품이다.
        맛도 있을 뿐더러 손쉽게 조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누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라면유래에 대해서는 중국의 상용식인 전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일본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전자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에 진출한 관동군이 중국인들의
        전시 비상식량인 건면을 보고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 건면을
        정제우지로 튀겨 보관이 쉽도록 포장하고 따로 조미인
        스프를 넣어서 인스턴트 식품화 했다는 설이다.

        이에 반해 후자인 일본 자체 개발설은 제 2 차 세계대전 직후를
        그 태동기로 보고 있다.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패배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었고
        1950년대는 일본에 있어서 건국 이후 최대의 고난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어느 나라든지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 나라에서 구호물을 보내긴 했지만 기껏해야 밀가루 정도였다.
        이때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 개발이 필요했고
        그때 일본의 안도 시로후쿠는 그가 연구하던 밀가루를
        다른 용도로 먹을 수 있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시로후쿠는 몇 년간의 연구 끝에 재산만 탕진하고 실패하고 말았고
        그 후 매사 의욕을 잃은 시로후크는 어느 날 술집에 들려
        고민하고 있는 중에 술집 주인이 어묵에 밀가루를 발라
        기름에 튀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때 시로후쿠는 '그래 바로 이거야 ' 눈이 번쩍 뜨이었다.
        그것은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기면 국수 속의 수분은
        증발하고 국수는 익으면서 속에 구멍이 생긴다.
        이 상태로 건조 시켰다가 필요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작은 구멍에 물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상태로 풀어지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라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후로 이것을 시점으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유탕면
        즉 기름에 튀긴 밀가루 음식인 라면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것은 그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일대 혁명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그리하여 그 해 가을 일본의 일청 식품이 국수면에 간단한
        양념국물을 가한 아지스케면을 처음공개하고 광고는
        '끓는 물에 2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판한 것이 처음이고
        1959년 명성식품에서 치킨라면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라면이
        조금씩 성장하게 되었다.

        당시 라면은 아지스케면(면 자체에 양념을 가한 것)으로
        시일이 경과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어
        1961년 명성식품에서 현재와 같은 스프를 분말화해 별첨한
        형태의 라면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라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국내에는 삼양식품이 1963년부터 라면생산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전수 받은 후 여러 연구실험을 거쳐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식 라면을 동년 9월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라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종주국인
        일본에도 수출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영상제작 : 천사의 나팔






        그의 마지막 소원

        벨기에 출신인 스혼바르트는 20년 이상 불치병과 싸웠습니다.
        무려 37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긴 싸움에 지친 스혼바르트는 41살의 나이로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벨기에 안락사 법에 따라 의사와 논의 끝에
        세상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가 팬으로 있는 벨기에 클럽 브뤼헤
        축구팀이 승리하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보는 것이었음으로
        경기를 보기 해서 안락사 일정을 뒤로 연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슈혼바르트의 안락사가 예정일을 연기하기 때문에
        약물을 투여 날짜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소중한 축구팀의 경기를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2015년) 3월 1일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환호 대신 정적이 흐르던 관중들은 기립박수와 응원가로
        슈혼바르트와 디나를 맞았습니다.

        그 날 스혼바르트는 가족과 함께 지난 1일 벨기에 브뤼헤에서 열린
        벨기에 프로축구 1부 리그 클럽 브뤼헤와 무스크론 페루벨즈의
        경기를 참관했습니다.
        구단의 배려로 스혼바르트의 딸인 디나가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습니다.
        팀은 지역 라이벌인 무스크론을 3-0으로 완파했습니다.

        무엇보다 스혼바르트를 감동시킨 것은 같은 브뤼헤의 축구 팬들이었습니다.
        스혼바르트의 사연을 알게 된 브뤼헤 팬들은 '로렌조,
        너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 다(You'll Never Walk Alone Lorre)'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습니다.
        구단과 팬클럽 회원들이 그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었습니다.
        구단 측은 부녀를 정식으로 초청했고 팬클럽 회원들은 플랜카드를 만들고
        밤새 응원가를 연습했습니다.

        이어 로렌조 부녀의 시축으로 경기가 진행됐고, 클럽 브뤼헤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3대0으로 상대 팀을 꺾어 승리를 선물했습니다.
        이후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이 기억이 딸 디나에게
        평생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꿈을 이뤘으니 행복하게 떠날 수 있다”는 말을 남긴 후
        예정대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그러한 길이 없다는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즈음은
        임사체험(臨死體驗)을 연구한 과학들이 이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발표하고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생(life after life)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삶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로렌조 부녀의 행복이 사후에도 계속될지 알기 어렵습니다.

        영상제작 : 동제





        발로 책을 쓴 여자

        20대의 한 중국인 여성이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발로
        네 종류의 책을 펴냈습니다.
        그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그 여인이 뇌성마비라는
        장애물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에서 태어난 순(26)씨는 생후
        6개월 즈음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영향인지 겨녀는 또래보다 언어능력 발달이 늦었고 걸음마도
        늦게 뗐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딸 순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 쓰기를 습득하도록
        힘을 보탰습니다.
        특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발로 글 쓰는 능력을 키우게 했습니다.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펜을 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발로 글 쓰기 능력이 점차 늘어나자 그녀의 다리에 일어나는
        경련도 잦아졌습니다.

        2002년 순씨의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면서 그녀의 인생이
        조금씩 바뀌어졌습니다.
        양발 신은 발로 키보드를 치면서 그녀의 글 쓰기도 점차 수월해졌습니다.
        그녀는 글만 쓴 것이 아니라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과정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독서를 좋아해 틈틈이 책도 모았습니다.
        그녀는 문학모임도 결성했습니다.
        그녀는 현재의 남편을 2013년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지난 2월에 결혼했습니다.

        그녀의 꿈은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미디어 기업 세우는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 류씨는 “아내의 밝은 성격에 반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글 쓴 것과 문학모임을 결성한 것이
        그녀의 매력으로 작용한 듯 합니다.
        남편은 “아내와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다”며
        “앞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녀가 최근 펴낸 책은 주로 자서전과 시집입니다.
        그는 발표자리에서 “비록 손을 쓰지 못하지만, 발은 남보다 빠르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종류마다 10권씩 총 40권이 나온 그녀의 책은 발표 당일 모두
        팔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녀는 수익금 전체를 뇌성마비 환자를 돕는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몸이 불편한 사람보다 더 큰 꿈을 갖고 이를 이루어나가는
        사람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