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그리움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

수성구 2016. 11. 4. 07:39

그리움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감동ノ눈물감동글

       





      그리움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물처럼 잔잔한 바람처럼 싱그러운 모습으로

      상큼한 아침의 향기 같은 사람 한잔의
      갈색 커피 같은 사람
      아름다운 향기로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은 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이
      그 사람을 따라 나섭니다.

      하루 내내 그립기만 한 사람 좋은 인연으로 만나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그리움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비울수록 채워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
      곱게 물든 한 잎 낙엽으로다가 가고싶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 향기 속으로 숲을 지나 깊어 가는 가을 밤 한잔의
      그리움으로 젖어드는 사람.

      그리움을 한껏 감춘 채 수줍은 미소로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영상제작 : 동제






      무슨 꿈을 갖고 있는가

      흔히 가계(家系)를 이야기할 때 조너던 에드워즈 집안과
      마르크 슐츠 집안을 예로 듭니다.

      미국의 개척사에 보면 18세기 초에 두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배를 타고와 신대륙인 미국에 내렸습니다.
      한 젊은이는 ‘마르크 슐츠’(Marc Schulze)이고 다른 젊은이는
      ‘조나단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 1758)입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신천지에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지만 그들의 꿈은 달랐습니다.

      마르크 슐츠의 꿈은 ‘이곳에서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
      내 자손은 가난을 모르게 부를 자손들에게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뉴욕에다 술집을 차려서 열심히 일하여 그의 꿈대로 엄청난
      돈을 벌어서 당대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나는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음으로 신앙이 자유로운 이곳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라 고 생각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50년이 지났고 5대 자손들이 태어났습니다.
      뉴욕의 시 교육위원회에서는 세간에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두 사람의 가계를 조사하기 위해 그 자손들을 추적하여 조사했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큰돈을 벌어 자손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꿈을 가진 마르크 슐츠의
      자손은 5대를 내려가면서 1,062명의 자손을 낳았는데 그 자손들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교도소에 서 5년 이상 형을 산 자손이 96명
      창녀가 된 자손이 65명
      정신이상이나 알코올 중 독자가 58명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460명
      정부의 보조를 받는 극빈자가 286명이었고

      그 자손들이 정부의 재산을 축낸 돈이
      1억5천 만 불(1800억 원)이었습니다.


      한편,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앙생활을 한 에드워드 조나단은
      유명한 프린스턴 대학을 당대에 설립하였고 5대를 내려가면서
      1394명의 자손을 퍼뜨렸습니다.

      자손들 중에 선교사 목사가 116명
      예일 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교수, 교사가 86명, 군인이 76명,
      국가의 고급관리가 80명, 문학가가 75명, 실업가가 73명, 발명가가 21명,
      부통령이 한사람, 상하의원 및 주지사가 나왔고,
      교회 장로와 집사가 286명 이 나왔답니다. 도합 816명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조나단 가문은 국가에 낸 세금과 지도자로서
      미국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정부 재산을 하나도
      축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의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꿈이 그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며
      큰 재물은 그 속성상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과 같은 요소들이 쉽게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대통령

      앤드류 존슨 (Andrew Johnson 재임기간 1865∼1869)은
      미국의 17대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긍정의 힘을 발휘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존슨은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13세에 양복점에 취직하여 성실하게 일했고 번 돈으로 17세에
      양복점을 차렸습니다.
      그는 구두수선공의 딸과 결혼 한 후 아내로부터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글에 배운 후에는 공부에 취미를 붙여 다방면의 교양을 쌓아나갔습니다.

      그러다 정치에 뛰어들어 테네시주지사, 상원의원을 그쳐 후에는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링컨대통령이 암살된 후에 그는 17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상대편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하고 존슨에게 조롱을 겸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존슨은 그를 때마다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하고는
      "예수님은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지만 전 세계를 구원의 길로
      지금도 이끌고 게십니다." 하는 한 마디 대답이 언제나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이 나라를 이끄는 힘은 학력이 아니라 긍정적 의지요
      미국 국민의 적극적 지지입니다."

      17대 대통령이 된 존손이 이룩한 중요 업적 중의 하나는
      그의 재임 중 알라스카 주를 러시아에서 사들였다는 것입니다.
      존손은 강직하고 여러 면에서 존경 받을만한 정치인이었지만
      험난한 정국으로 인해 불행한 재임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고 행한 것 중의 하나는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이다." ,
      "긍정적인 생각 없이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행복해질 수 없다." ,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원한다." 는 신념이었습니다.
      그가 임기 중 만난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긍정적이 사고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청바지 이야기

      스트라우스의 블루진(blue jeans, 청바지) 실패가 안겨 준 행운

      오늘날 최고의 의류로 꼽히는 것은 단연 청바지일 것이다.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여 젊음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청바지는 19세기 중엽에 탄생하였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청바지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청바지는 천막천 생산업자였던 미국인 '스트라우스'가 발명하였다.
      1930년대 초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많은 양의 금이 나왔다.
      자연히 금을 캐려고 모여드는 사람들로 이른바 '골드러시'를
      이루었고 이에 따라 전 지역이 천막촌으로 변해갔다.
      이때에 스트라우스는 밀려드는 주문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군납알선업자가 찾아와 대형천막 10만 여개 분량의
      천막천을 납품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의했다.
      뜻밖의 큰 행운을 잡은 스트라우스는 즉시 빚을 내어
      생산공정에 들어갔다.
      공장과 직원을 늘려서 밤낮으로 생산에 몰두해 3개월만에
      주문 받은 수량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문제가 발생하였다.
      빚까지 내어 생산을 마치고 나자 어찌된 일인지 납품의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산더미 만한 양의 천막천이 방치된 채 빚 독촉이 심해지고
      직원들도 월급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었다.
      헐값에라도 팔아 밀린 빚과 직원들의 월급만이라도 해결하고
      싶었으나 엄청난 양의 천막을 한꺼번에 사줄만한
      사람이 나설 리가 없었다.

      스트라우스는 고민하던 어느 날 주점에 들렀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금광촌의 광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헤어진 바지를 꿰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트라우스는 그때 문득 생각했다.
      ‘그래 바지를 질긴 천막천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
      1주일 후 스트라우스의 골치거리였던 천막천은
      산뜻한 바지로 탈바꿈되어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스트라우스는 이 작업복을 블루진(blue jeans)이라 이름 붙였다.

      푸른색의 잘 닳지 않는 바지인 청바지는 뛰어난 실용성을
      인정받아 광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청바지가 유행을 일으킨 것은 미국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의 제임스 딘이 청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흉내내어 청바지를 입기 시작하였다.
      이후 서부 카우보이 영화를 그리며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청바지를 입고 나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편 대학생들은 노동자들과의 단결의 표시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청바지를 입게 되었고 유니섹스의
      첫 출발이기도 하였다.
      세상에 나온 지 3년 만에 스트라우스의 청바지는
      지구촌 곳곳에 탄탄히 뿌리를 내렸고 스트라우스는
      그야말로 평생을 황금방석 위에서 살 수 있었다.


      영상제작 : 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