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감동의 스토리 492

격려가 총리를 만듭니다!

격려가 총리를 만듭니다!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1860-1941). 1918-19 년 폴란드 초대 총리 겸 외무 장관 피아니스트가 꿈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년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마침내 음악학교에 들어갈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얘야. 넌 손가락이 너무 짧고 굵구나. 피아니스트로선 성공하기 어려운 손이다. 차라리 다른 악기로 전공을 바꾸는 게 어떻겠니?" 교수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소년의 짧고 굵은 손가락을 지적합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빨간 머리 소년은 여러 다른 악기들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소년의 음악적 열정을 만족시켜줄 만한 악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부푼 꿈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간들 입니다. 어느 날 소년은 한 파티 모..

우리는 무식한 부부

우리는 무식한 부부 우리는 무식한 부부 내 남편은 건설현장 근로자다. 말로는 다들 직업에 귀천이 없다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칭 노가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둔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어쩌다 친정엘 가도 풀이 죽는데, "남들은 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에 가끔 길을 가다가도 신축 중인 건설 현장을 보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 "내 남편도 저렇케 일하겠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며칠 전 남편이 좋아하는 우렁이를 사려고 시장엘 갔다. 우렁이를 사고 막 돌아서려는데 인도네시아 에서 온듯한 남자 둘이서 토시를 가르키면서 "이거 얼마예요?" 하고 서투른 우리말로 물어 보는게 아닌가. 아줌마가 천원이라고 답하자 그 두사..

성악가 조수미의 애국심

성악가 조수미의 애국심 조수미(曺秀美)ㅡ 세계 Top Class 인 Opera 가수 조수미(曺秀美) 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조수경이였는데 발음이 부자연스러워 조수미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이며 서울 선화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원래 피아노 신동이었지만 주위에서 노래를 시켜야 한다고 적극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미 어릴적 부터 천재성이 보여 그런 이유로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재학중 같은 학교 경영학과의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 후 그녀는 연애를 시작 하면서 조수미의 모든것이 달라졌고 예전의 조수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교수와 부모님은 상의 끝에 조수미의 장래를 생각해서 서울대를 중퇴시키고 세계에서 가장오래되고 ..

아주 기막힌 인연

아주 기막힌 인연 대한항공 승무원 서서영씨. 승무원들의 세계를 밀착 취재하기 위해 4박5일 일정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모험을 강행하고 왔습니다. 대한항공과 에어프랑스를 이용, 인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와 뉴욕을 거쳐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지요. 이 과정에 만난 승무원(조종사 포함)들이 40여 명 됩니다. 이들의 생활을 좇아 운항 준비부터 취항하는 현지에서의 일과까지 꼼꼼이 취재했습니다. 승무원 생활 중 일어난 갖가지 일화도 듣게 됐습니다. 그 중 아름다운 사연이 하나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서영 씨 이야기입니다. 1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객실 승무원들이 한 차례의 서비스를 마친 후 일부가 벙커(여객기 ..

태종 이방원을 배운다

태종 이방원을 배운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흐르게 했던 왕은 태종(太宗, 1367~1422) 이방원이었다. 방번, 방석 어린 형제는 물론 개국공신 정도전부터 처가 민씨 집안까지 완전히 도륙을 냈던 이방원이었다. 필자(筆者)는 지금도 그 잔인함에 차마 경어(敬語)를 쓸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왜 태종이라는 시호(諡號)가 붙었는지, 시호에 클 태(太)자가 붙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를 이어 그 자식 이방원에게도 클 태(太)자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식이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 시호는 왕의 붕어(崩御) 이후, 후인(後人)들이 붙인다. 그러니까 후세의 인물, 즉 세종과 그 신하들은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와 같은 동급의 왕이었다는 평..

어느 노모의 흰머리

어느 노모의 흰머리 오늘도 어김없이 부부는 칠순 노모가 차려주는 저녁상을 받습니다.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살림은 통째로 눈 침침하고 허리 굽은 칠순 노모의 차지가 돼버린 것입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노모가 차려준 저녁상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노모가 불쑥 말을 꺼냈습니다. "나 돋보기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 생전 당신 입으로 뭐하나 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다 신문 한 장 볼 수 없는 까막눈 어머니가 돋보기를 사달라니 웬일인가 아들은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저녁. 먼저 퇴근한 아내가 막 현관에 들어서는 남편에게 다가와 호들갑을 떱니다. "여보 아무래도 어머님 늦바람 어제는 안경을 사내라고 하시더니, 오늘은 염색까지 하..

태종 이방원을 배운다

태종 이방원을 배운다 태종 이방원을 배운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흐르게 했던 왕은 태종(太宗, 1367~1422) 이방원이었다. 방번, 방석 어린 형제는 물론 개국공신 정도전부터 처가 민씨 집안까지 완전히 도륙을 냈던 이방원이었다. 필자(筆者)는 지금도 그 잔인함에 차마 경어(敬語)를 쓸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왜 태종이라는 시호(諡號)가 붙었는지, 시호에 클 태(太)자가 붙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를 이어 그 자식 이방원에게도 클 태(太)자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식이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 시호는 왕의 붕어(崩御) 이후, 후인(後人)들이 붙인다. 그러니까 후세의 인물, 즉 세종과 그 신하들은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와 같은..

진주기생 산홍(山紅)

진주기생 산홍(山紅) 산홍 / 출처-두산백과 진주 촉석루 벼랑에 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후세에 좋은 이름으로 길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새겼을 것인데, 보는 이들은 눈살부터 찌푸린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 섰던 그 이름들도 함께 있으니, 말 그대로 오욕 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논개의 넋이 깃든 곳에 한점 부끄럼을 남긴 것이 아닐까. 그 중 눈길을 끄는 이름도 있다. 山紅이란 두 글자. 당시 지체 높은 권문세가의 어르신들(?) 이름 곁에 한 획을 남긴 산홍은 누구였을까. 바로 당대를 풍미했던 진주 출신 기생 이름이다. 진주 출신 작곡가 이재호씨(1919-1960)는 노래로써 산홍을 애타게 찾기도 하였다. 산-홍아 너만-가-고 나는 혼자-버-리-기-냐 너---없는 내가-슴-은 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