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주님 봉헌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0. 2. 2. 03:21

주님 봉헌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조욱현 신부 강론

       

 

 

주님 봉헌 축일

 

복음: 루카 2,22-40: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다. 오늘은 그리스도 예수를 낳으신 마리아가 모세 율법을 따라 정결예식을 행한 것과 예수님의 성전 봉헌을 기념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 날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봉헌한 것을 따라 참회행렬을 했었는데, 이 행렬에 사용된 초를 장엄하게 축복하던 전통이 일 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성하는 것으로 전례 안에 정착되었다.

 

맏배는 모두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율법을 지키는 이것은 또한 언제나 하느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께서 맏아들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 행위는 바로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고 그 대가로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 때에 그것이 내가 모든 것을 잘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위의 칭송이나 칭찬을 바라게 되고, 하느님께 그 영광을 돌리지 못하면,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지 의미마저 잃게 될 것이다. 작은 것이나 큰 기쁨이나, 심지어 아픔까지도 그분 앞에 겸손하게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으로 우리의 유한한 것이라도 그분에게 닿기만 하면 즉시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더욱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모님과 요셉은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하신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체를 받아 모시듯이 예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시고 나서 제단으로 나가신다. 율법을 씨를 받아”(레위 12,2 칠십인역)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한 몸이 되었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낳은 자식과 함께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바쳐야 깨끗해진다고 한다. 이 율법과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23)는 율법을 따르기 위함이었다.

 

노인인 시메온과 한나는 깊은 신심을 고백하며 주님을 맞았다. 그들은 아직 아기인 그분을 보고서도, 위대한 신성을 진닌 분임을 알아보았다. 이 두 사람은 오랫동안 주님을 기다려 왔고 그분이 오시자마자 신심 깊은 행실이란 두 팔과 꾸밈없는 믿음인 목소리로 그분을 찬미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든 남녀 백성들을 나타낸다.

 

의인 시메온은 그분을 마음으로 보고 아기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하느님의 아들을 품에 안고 기도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29-30) 구원은 먼 훗날 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현재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구원을 이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기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쓰러지게 하고 믿는 다른 민족들은 일어나게 하실 분이다.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34) 십자가가 바로 그 반대를 받는 표징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그분을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고 조롱했기 때문이다. 구세주의 모든 것이 반대를 받고 있다. 처녀가 어머니라는 사실이 반대를 받는 표징이다. 그리스도는 여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마르키온파가 있으며 에비온파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35) 마리아의 영혼을 꿰찌르는 칼은 그의 슬픔을 가리킨다. 마리아는 당신의 일생 동안 아드님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으셨다. 그리고 아드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모두 겪으셨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아드님이 죄인으로 몰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어머니의 가슴은 칼에 꿰찔리듯 아마 그 이상으로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낼 것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그 말씀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시메온의 뒤를 이어 여예언자 한나가 등장하고 있다. 먼저 시메온이 아기를 뵙고 품에 안아 본 다음에 한나가 나타났다. 한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38)고 한다. 복음에 그녀의 조상과 지파를 밝힘으로써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확인시키고 있다. 그들이 증인이 되는 것이다.

 

신비적인 의미로 한나는 배필의 죽음으로 과부가 된 교회를 의미한다.

 

한나라는 여인은 결혼한 후 7년 동안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된 사람이었다. 84세에 이르도록 성전에 몸담아 하느님께 봉사와 기도로써 지내왔다. 이것은 하느님 공경에 참으로 정성스러운 생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그러한 그 할머니가 성전에서 봉헌되는 구세주 아기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아보고 기뻐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증언하였다고 한다.

 

오늘 복음의 한나 할머니는 과부가 되었으나 자신의 삶이 하느님 안에 있음을 알았고 충실히 믿었기 때문에, 또 하느님이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분이시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성전에서 일생을 봉사와 기도로써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나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 아기 예수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나이를 먹고 기운이 없어져도 오늘 복음의 안나 할머니처럼 믿음 안에서 주님께 봉사하며 기도하는 속에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삶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을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