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전삼용 신부님

왕직|………◎

수성구 2018. 2. 8. 04:38

왕직|………◎ 전삼용♡신부

           



왕직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코 7,14-23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영국의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에나가 글을 쓴 것 중에 하나의 내용을 간추려봅니다.

그녀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가끔 찾아보고 껴안아주곤 하였습니다. 한 번은 1991년 미국 전대통령의 부인 부시 여사와 함께 에이즈 환자 수용소를 방문하였습니다. 한 남자 환자 침대에 앉았는데 너무도 병들어 보이는 그 남자는 다이에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에나의 마음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다이에나, 뭘 망설이는 거야? 어서 이 사람을 껴안아.’

에이즈에 걸렸고 다른 병까지 걸린 그 사람을 껴안는 것은 누구나 꺼려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의 소리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를 꼭 껴안았습니다. 그는 왕세자비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다이에나의 웃을 흠뻑 적셨습니다. 그리고 다이에나의 마음도 그와 함께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침대 옆에는 한 젊은 에이즈 환자가 누워 있었고 그의 친구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환자는 왕세자비에게 눈시울을 적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번 크리스마스 무렵쯤에 죽게 될 거예요.”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으면 좋겠어요.”

왕세자비는 이들에게 자신의 지금까지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는 많은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수많은 환자들을 보아왔어요. 어떤 이들은 힘겨워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잘 받아들였고 그들은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친구 분도 이분의 임종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이 둘도 왕세자비의 손을 잡고 “정말 그럴까요?” 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이에나는 이 병원에 있는 것이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궁으로 돌아와 가든파티나 세계 정상급 회담이 열리는 디너파티에 참석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어느 날보다 내가 말기 환자들의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은, 나는 밤에 자려고 불을 끄면서 내 자신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음을 안다.’
[참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저녁 때 방에 들어와서 하루 일을 뒤돌아보다보면 말과 행동을 실수하여 후회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도 어떤 분에게 약간은 예의 없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고는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의 평화가 깨질 수 있는 낮은 저의 영성수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것보다 내 자신을 낮은 수준에 두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힐 수 있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렵혀진다는 것은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흐르는 물의 아래를 더럽힌다고 윗물이 오염되지 않습니다. 항상 윗 수준이 아래 수준에게 영향을 미치고 오염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마음은 육체나 세상보다 윗 수준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외적인 것 때문에 내적인 평화가 깨진다면 스스로 외적인 것을 더 높여 놓아 자신의 마음까지 영향을 받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들을 우리는 ‘우상’이라 부릅니다. 만약 돈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하고 미움이 들어오고 평화가 깨졌다면 돈이 나의 마음보다 위에 수준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볼 거라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 졌다면 나의 마음은 세상의 명예보다 낮은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다이에나는 왕세자비입니다. 그럼에도 궁궐보다는 죽어가는 이들 곁에 있을 때 마음이 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이들에게만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에게만 왕세자비였던 것이고, 궁궐에 들어가면 그녀의 말대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아주어야 하는’, 어찌 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주어야 하는 종의 처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기대가 나를 좌지우지할 때 나는 자유롭지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윗물인 ‘마음’이 자기 자신이나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서 안 좋은 것들이 나온다면 우상들의 종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나의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악이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면, 반대로 온갖 좋은 것이 마음으로부터 나와서 나와 세상을 이롭게도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드높이 올려 하느님과 접하여 어떤 것도 그 평화를 깨지 않게 하고 우리 자신을 오염시키는 안 좋은 것들이 마음에까지 흘러들어오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때서야만 내가 이 세상의 종이 아닌 참다운 하느님의 자녀, 왕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2014)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