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주님만을 바라보는 영혼

주님만을 바라보는 영혼 하느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항상 굳게 간직하라. 그대와 형제들 속에 하느님께서 제일 소중히 보시는 것, 즉 은총의 영적 보화를 항상 소중히 하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고자 하실 때면 그만큼 우리의 소망도 넓히신다. 우리 영혼을 당신의 재보로 충만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무(無)로 돌리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외의 어떤 것에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는 영혼을 흐뭇해하신다. 이런 영혼은 "바라는 대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 십자가의 성 요한 -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성경의 모델들, 곧 성경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큰 꿈을 이룬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아 동기를 얻어서 자신 있게 꿈을 품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야곱, 요셉, 다니엘 등이다. 성경 말씀은 이처럼 우리가 갈 길을 비추어 준다. 이를 체험한 증인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119,105). 판단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혼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말씀의 빛으로 그것들을 비추어보면 옳고 그름이나 우선순위를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 -

모든 것은 그분한테서 온다

모든 것은 그분한테서 온다 정원을 가꾸듯 영혼을 가꾸어라. 흙을 뒤엎고 잡초를 뽑아라.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비가 내린다. 새로운 꽃, 네가 기대하지도 않던 꽃들이 피어난다. 네 영혼도 이와 같다. 너는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그분한테서 온다.' 네 삶을 돌아보아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내 얼굴을 보느냐? 또 다른 사건,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너를 데려간 일은 내게 적절한 것이 아니었더냐? 힘들었지만 너는 그 무게를 감당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음에 감싸이는 은혜를 입게 되리라. - -

믿음의 눈으로 사물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사물을 볼 때 삶은 참으로 지루하고 무미건조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보화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제가 믿음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볼 때, 지루함과 무미건조함은 사라지고, 매 시간이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저에게 주어진 은총은 다음 시간에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은총이 다시 저에게 주어진다 해도, 똑같은 은총이 아닐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결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시간 안에 묻힌 것은 절대로 다시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이라는 인장으로 영원히 봉인되는 것입니다. - 성녀 파우스티나 -

참된 의미의 겸손

참된 의미의 겸손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은 겸손을 잘못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거나 비하하는 것, 또 자기의 아무 재능도 능력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겸손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겸손이 아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겸손은 '나는 쓰레기 같은 존재다.' 라는 식의 자기 비하적 언사가 아니라고 했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과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알고 그에 맞갖게 행동하는 것이다. (중략)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이며 나는 그분의 도구임을 자각하는 것이 참된 의미의 겸손이다. - -

죽음의 체험

죽음의 체험 (성경 속 하느님 생각 민남현 수녀) 저자는 바다에 폭풍을 일으킨 이가 주님임을 밝혔듯이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것도 하느님의 계획임을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바다와 큰 물고기는 카오스. 죽음. 허무의 상징이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갇혀있으면서 죽음을 체험했다.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나를 하느님은 이 사건을 통해 교육하신 것이다. 죽음의 터널에서 마침내 요나가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소개된다. 이는 요나에게 일어날 큰 변화를 예측하게 한다. 저자는 물고기 사건을 통해. 주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는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좋지 않은 기억들

좋지 않은 기억들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들을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한 채로 살아갑니다. 기억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밑에 가라 앉은 물건처럼 무의식 안에 가라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 속에서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만져보고 느껴보곤 합니다. 소위 추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삶이 각박하다고 느껴질 때면 기억의 창고 속에서 그리운 추억들을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로를 받습니다. 문제는 좋지 않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사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늘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좋지 않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마음을 구정물로 채워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에 시달리며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

인맥 자랑

인맥 자랑 8월 셋째주 연중 제21주일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루카 13.22-30) 인맥 자랑 (마진우 신부. 대구대교구 초전성당 주임) 빛에 익숙한 이들은 어둠을 기피하고 반대로 어둠에 익숙해진 이들은 빛을 싫어하게 된다. 우리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이른 아침에 갑자기 밝은 불을 켜면 눈이 고통스럽고. 정반대로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불이 꺼져도 불편함을 겪게 된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이렇게 살면 하느님께서 나를 잘 알아주시겠거니 생각한다. 그런데 주님이 알아보시는 신앙생활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평소에 ..

우리의 선익을 위해서

우리의 선익을 위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길을 마련하셨고 우리가 행복해짐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이 된다. 하느님의 본성은 선이시기 때문에 무한히 선하시다. 선은 확산하는 성격이 있으므로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그 선이 확산되어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열망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선익을 위해서이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8,28)는 데 있다.

참된 의미의 겸손

참된 의미의 겸손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은 겸손을 잘못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거나 비하하는 것, 또 자기의 아무 재능도 능력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겸손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겸손이 아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겸손은 '나는 쓰레기 같은 존재다.' 라는 식의 자기 비하적 언사가 아니라고 했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과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알고 그에 맞갖게 행동하는 것이다. (중략)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이며 나는 그분의 도구임을 자각하는 것이 참된 의미의 겸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