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3032

먼저 속을 깨끗이 닦아라

먼저 속을 깨끗이 닦아라 먼저 속을 깨끗이 닦아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23,23-26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일조를 바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법규였다. 박하와 회향, 근채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정원 같은 조그마한 터에 조금 양념 정도로 심을 뿐이었다. 이것들의 십 분의 일이란 아주 소량이어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만이 실행하였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런 십일조까지도 드렸다. 이들은 십일조에 대해서는 철저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불의를 범하고 잔인하였으며 자비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귀를 막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렇게 행하면서도 하느님을 제대로 모시고 있다고 자부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

4월 27일 수요일 묵상

4월 27일 수요일 묵상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서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부분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하여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하느님을 모시고 오셔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가 알게 해 주시고, 그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주님 성탄 감사송 1).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우리가 가는 길은 맑은 샘물의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 길을 가기 위해 경건하게 성호를 그으며 성부, 성자, 성령이 내게 강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좀 더 옳고 바른길을 찾으며 사랑이 싹트기를 바라는 마음, 가뭄에 단비를 맞는 축복의 길을 오늘도 걷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흠숭하면서 그 분의 경이로움 안에 머물기 위해 우리는 때로는 수줍음과 때로는 부끄러움으로 마치 앳된 소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흠모하는 심성으로 하느님의 손길을 살포시 잡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품안으로 살며시 안기는 마음입니다. 틈만 있으면 찾아가는 교회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과 아름다운 꽃들이 반기는 곳은 아니..

용서할 수 있는 힘

용서할 수 있는 힘 마태오 복음 18장 21-35절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 종들의 삶은 자신이 모시는 임금에게 달려 있습니다. 임금을 모시고 살기에 자신들의 삶 역시 임금의 삶을 닮아갑니다. 그런데 임금의 자비는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행동하면 임금과 함께 할 수 있는 자격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반대로 임금의 자비를 깨달은 종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그 자비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약한 사람이기에 때로는 지치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사랑이 채워지기도 전에 그 사랑을 전하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점점 내면이 고갈되어 하느..

간절함

간절함 마르코 복음 6장 53-56절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 때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갖게 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심정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장면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교회라는 담장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이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문 밖에 있는 거지 라자로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문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코로나로 경제적, 심리적 , 영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나의 타협은 정당한가

나의 타협은 정당한가 마르코 복음 6장 14-29절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 보좌 신부 시절, 청년회에서 전례에 대한 토론을 할 때였습니다. 어떤 청년이 “왜 미사 때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고, 찢어진 청바지나 짧은 옷을 입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복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어찌보면 참 당연한 말이고 쉽게 수긍이 갈만합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신앙과 신앙심에 대해 대단히 너그럽게 판단하고 타협하는 실수를 잘 저지릅니다. 우리는 미사와 전례에 참여하는 우리 마음 자세와 기도생활에 얼마만큼의 정성이 들어가 있는지 ..

나를 위해 준비하는 분

나를 위해 준비하는 분 마르코 복음 6장 7-13절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작년에 들었던 노래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얼마나 사랑하고 생각하기에 꽃 향기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지 참으로 예쁜 가사입니다. 흔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맛있는 걸 보면 함께 먹고 싶고, 좋은 공연 포스터를 보면 함께 가고 싶고 무엇을 보든 그 사람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 싶어 그 좋은 것을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시는 분. 우리에게 어떤 것이든 ..

손바닥도 마주쳐야

손바닥도 마주쳐야 마르코 복음 6장 1-6절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복음 속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면 예수님께서 이루신 기적 하나하나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적이 이루어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적을 청하는 이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옛날 모습에 갇혀 그분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이 그분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데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주님을, 또 주님의 말씀을 접하는 신앙의 자세가 어떠한지를 성찰해보아야 하겠습니다. 혹시 우리는 그때의 나자렛 사람들처럼 새로운 눈으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세속의 눈으로,..

예언자적 소명

예언자적 소명 루카 복음 2장 22-40절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 교회에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성무일도의 끝기도를 통해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시메온의 노래를 기도로 바칩니다. “주여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마치 일생의 삶을 정리하듯 하루를 마치며 이 노래를 바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이 노래를 바치는 시메온에게 아기 예수의 존재는 자신의 죽음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와 구원 그 자체입니다. 예언자 한나 역시 같은 때에 사람들에게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는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겠다 하신 하느님 약속이 이루어짐을 과거에도 기다렸고 또 지금도 기다리는..

‘나’를 없앰

‘나’를 없앰 마르코 복음 5장 1-20절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 동기 신부가 유학하던 시절, 술 한잔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내뱉은 말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똥개도 알아듣는 말을 나만 못 알아 들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10년 전 들었던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군대라고 불리는 악령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며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하다못해 악령도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하느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는 우리들은 어떠한가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그분께 고백해본 적은 있나요? 예수님을 알아보는 방법은 참 모순되게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악령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악령은 누군가에게 기생해야 살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