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하늘나라 마전장이

수성구 2015. 3. 9. 12:44


하늘나라 마전장이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하얀 천으로 된 요와 이불 홑청을 빨래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이불 홑청을 긴 시간 잿물에 담가 놓았다가 잘 헹구어서 발로 밟고, 
    다듬이로 두드리고, 손으로 당겨 펴서 좋은 햇볕에 널어 잘 말리면 
    참으로 눈부시게 하얀빛이 감도는 천으로 변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따라서 밟고 두드리고 잡아당기고 하였는데, 
    어느새 하얗게 변한 이불 홑청은 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요즘은 워낙 성능 좋은 표백제가 많이 나와서 예전의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어린 시절 새하얀 새 이불이 가져다주었던 행복한 
    감정은 느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미리 예고하시면서 사랑하는 
    제자 셋을 따로 불러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시어 영광스러운 모습을 부여주십니다. 
    그분의 옷은 그 어떤 마전장이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앞으로 당신이 차려입을 영광스러운 옷을 
    미리 보여주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겪게 되는 수난과 죽음의 과정이 
    바로 이 새 하얀 옷을 마련하는 방법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보고 배우라는 
    가르침의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찮은 이불 홑청도 하얗게 만들기 위해서는 잿물에 담그고, 물로 헹구고, 
    발로 밟고, 손으로 두드리고, 잡아당기고, 널어 말리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한데, 
    하물며 부활의 영광을 입는 그 옷을 마련하는데 있어서야 어찌 더 큰 수고로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수많은 모욕과 백해를 견뎌내고 죽음의 강을 건너가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이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손수 하늘나라 마전장이의 모범을 보여주려 하십니다. 
    세상이 가져다주는 아무리 성능 좋은 표백제를 사용한다 해도 부활의 영광에 
    합당한 옷을 마련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방법 그대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판공성사가 한창입니다.
    그동안의 삶의 자리를 성찰하면서 부족했던 모습들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가운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갈수록 고해성사도 성능 좋은 표백제를 선호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듣기 좋은 소리해주고, 짧고 간단하게 해주고, 쉬운 보속주고….
    과연 그렇게 하고 고해소를 나오면 행복할까요?
    수원교구 
    이근덕 (헨리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