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감태준
떠날 때가 왔다. 이 집에서 가장 먼 곳에 너의 집을 지어라.
새는 둥지를 떠날 때 빛나고 사람은 먼 길을 떠날 때 빛난다. 외투를 입어라. 바람이 차다.
길 곳곳이 얼음판이다. 겁 없이 미끄러지고 외투에 흙 남기지 마라. 외투란 먼지만 묻어도 누더기다. 사람의 집을 찾아라. 마음이 불어가는 쪽에 있다. 마음에 들어가 쉬어라. 이제 도도히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 가 너의 집을 지어라.
아들에게
풍랑에 부풀린 바다로부터
영원할 것만 같았던
ㅡ시집『속이보이는 심연으로』(문학과지성사, 2001)
한고조 유방은 항우와 백번 싸워 아흔아홉번을 지고 한번을 이겼다고 한다. 그 한번을 이긴 것이 마지막 싸움에서 이겨 천하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전력이 말하듯 유방은 항우와는 싸움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는다. 한번은 부모가 항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항우는 유방에게 항복을 하지 않으면 네 부모를 팽형을 시킨다고 했다. 팽형은 솥에 물을 끓여 삶아 죽이는을 말한다. 이 말을 받은 유방은 끓이면은 나도 한 그릇을 퍼 다오 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항우는 유방에게 인질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또 전세가 불리해져 자식들을 마차에 싣고 쫓기게 되었다. 뒤에서는 항우의 기병들이 점점 가까이 추격을 해오고 마차는 속력이 나지 앉자 다급해진 유방은 마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식들을 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 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내던져졌던 자식은 나중에 유방의 뒤를 이어 왕이 되지만 유방은 단순히 저 혼자 살기 위해 자식을 버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어깨엔 수많은 백성과 대의라는 보다 큰 명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가들이 그른 비난하지 않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사상이 자식을 중히 여기지 않았기 대문일 것이다.
시대상황이 다르고 제왕이 전장에서 겪어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보통 시대에 평범한 아버지와 자식에게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유방은 패륜의 불효자이며 박정하고 매정한 아버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죽하면 항우가 유방의 모진 성격을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보고서야 알았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아버지의 자식들 사랑은 어떠할까. 시대가 강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하고 약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하겠지만 이 시대는 좋은 아빠는 넘쳐난다고 한다. 다음이나 네이버 포털사이트의 검색에서 좋은 아빠를 한번 쳐보라.
“좋은 아빠가 되는 법, 좋은 아빠의 자격, 좋은 아빠의 모임, 좋은 아빠가 되기육아 스쿨, 좋은 아빠 도전하기, 좋은 아빠 10계명, 좋은 아빠가 되었던 사례, 좋은 아빠의 7가지 비밀, 좋은 아빠 되기 프로젝트, 좋은 아빠 학교, 좋은 아빠 보고서, 좋은 아빠 테스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등 등... 수도 없이 많다.
좋은 아빠에게 권위란 것이 있을까,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아들을 이길 수가 없다. 직장 상사 같은 명령 하달식의 아빠는 이제 나쁜 아빠일 뿐이다. 아들을 위해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온갖 수발을 다하지만 아들이 보험이 아닌 시대에 더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분신 같으면서도 분신이 아니어서 애증이 교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염려스럽고 바라보는 뒷모습은 애잔하기만 하다.
문정희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9』(국립공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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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홀로서기 3』(문학수첩, 1997)
랭스턴 휴즈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할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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